[지하철에서 읽기 좋은 책 '메트로 북'] 사랑은 비극인가, 『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읽기 좋은 책 '메트로 북'] 사랑은 비극인가, 『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6.2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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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북’은 이런 것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대신 책을! 지하철 승객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출퇴근길 독서를 권한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권할까. 독서신문은 이런 고민 끝에 지하철에서 읽기 좋은 책 기획물을 연재한다. 일명 ‘메트로 북’이다. 책 선정 기준은 우선 작고 가벼워야 한다. 그래야 핸드백에도 넣을 수 있어 갖고 다니기 좋고 지하철에서도 옆자리 승객에 불편을 안 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딱딱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가벼운 에세이, 유머가 있는 소설, 읽으면 위로가 되는 책 등이 좋다. 출판사와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바란다. <편집자>

 

[독서신문] 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제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티투스가 누구고 베레니스는 또 누구기에.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인지도 잘 구분이 안 간다.

그러나 이 소설이 사랑의 슬픔에 관한 원형질을 보여준다면 관심이 있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베레니스는 (사랑하는 남자의 떠남으로) 실망하는 여자의 원형이며, 사랑하지만 헤어지는 여자의 원형이라면 이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 더욱 궁금해질 것이다. 프랑스 마담 피가로가 이 책을 평한 기사의 한 대목을 옮겨 보았다.

여자의 이름은 베레니스, 남자는 티투스. 전형적인 이별의 모습으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1세기 로마 황제 티투스와 유대 공주 베레니스(또는 베레니케)의 이야기가 그 원형이다. 티투스는 로마 백성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베레니스를 버리고 ‘애인’ 로마의 황제가 된다.

21세기 실연 아픔을
17세기 프랑스 작가 라신이 달래준다

로마 황제의 사랑과 배신을 오늘의 언어로

그렇다. 사랑의 도식은 세월이 무수히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사랑은 뜨겁거나 어긋나고, 어긋나거나 배신한다. 사랑의 슬픔은 고통스럽고, 사랑의 기쁨보다 오래간다. “사랑의 슬픔에서 회복되려면 1년이 필요하다고 흔히들 말한다. 진실을 무디게 만드는 온갖 진부한 말들도 있다”<297쪽>.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21세기의 베레니스는 어느날, 자신이 느끼는 고통을 절절히 표현한 위대한 17세기 프랑스 비극 극작가 라신의 시구를 접하고 그의 작품을 모두 찾아 읽는다.

라신은 사랑의 비극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작가로 『베레니스 페드르』 등 12편의 작품을 낸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시인이다.

이제 21세기의 베레니스는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17세기 작가 라신을 읽기 시작했다. 그 어떤 경구나 위로의 말보다 라신의 12음절 시는 그녀를 깊이 위로해준다.

“그녀는 분노, 버림받은 느낌, 긴장감 같은, 자신의 굴곡진 기분과 어울리는 시구를 언제나 찾아낸다. 그리고 대화 속에 인용구절을 집어넣을 때 생겨나는 진지함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라신은 사랑의 슬픔을 파는 슈퍼마켓이다”<13쪽>.

라신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돼 프랑스 포르루아얄 수도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우고 고전을 번역하며 자신의 언어를 갈고 다듬는다. 파리로 자리를 옮기며 라신은 전혀 다른 세계를 접한다. 화려한 사교계와 살롱, 연극, 궁정 세계 등이다.

몇 편의 비극으로 태양왕 루이 14세 눈에 들어 왕의 목소리가 되고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된다. 그는 베르사유 궁정을 드나들며 수도원과 궁정이라는 두 세계로 찢어진다.

하나님과 어둠, 정적과 금욕의 세계, 사치와 관능, 왕과 빛 등이 그의 내면에서 부딪치고 갈등하고 합류한다. 이 두 극단의 만남이 라신을 불후의 작가로 만들고 그만의 언어를 빚어내게 한다.

“이 소설을 지은 나탈리 아줄레는 베레니스의 이별과 라신의 삶, 혹은 베레니스의 비극과 라신의 비극이라는 두 이야기로 소설을 엮었다. 라신의 삶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며 야심과 열정, 질투와 사랑, 배신과 상실 등 그가 느꼈을 모든 감정들을 예리하게 해부했다.”<300쪽, 옮긴이의 말>.

그러면서 옮긴이 백선희는 ‘나탈리 아줄레가 대리석 조각상으로 굳은 이 거장 라신에게 혈색과 표정을 입힌 아름다운 전기’라고 말한다. 페이지마다 빛나는 나탈리 아줄레의 품격 있는 문체는 소설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소설 속으로 더욱 깊숙이 독자를 이끈다. / 엄정권 기자

『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탈리 아줄레 지음 백선희 옮김 무소의뿔 펴냄 304쪽 15000원 (127㎜x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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