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 이슈 : 박열- 한 사람을 보는 세 개의 시선- 1] 김별아 장편소설 『열애』
[북 & 이슈 : 박열- 한 사람을 보는 세 개의 시선- 1] 김별아 장편소설 『열애』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7.06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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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폐허. 폐허였다. 사상은 방편이 되지 못하고, 종교는 구원이 되지 못하고, 사랑조차 위로가 되지 못했다. 아무도 믿지 못할뿐더러 자기 자신마저 믿을 수 없었다. <118쪽>

후미코가 그랬다. 후미코는 그런 가운데 우연히 짧은 시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를 보게 된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 하늘을 보고 짖는 / 달을 보고 짖는 / 보잘 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 나도 그의 다리에다 /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후미코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스쳤다. 겪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무엇이 있다. 몸이 아닌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시의 작자는 그것을 뼈저리게 체험한 사람이 분명했다. <121쪽 요약> 작자는 박열이었다.

『열애 : 박열의 사랑』
김별아 지음 │ 해냄출판사 펴냄 │ 296쪽 │ 13800원

김별아 작가

독립운동가와 일본인 아내’라는
정형의 틀을 깬 운명적 만남·사랑

아나키즘 꿈 꾸며 청정한 빛으로 부활

이 책 제목 ‘열애’는 박열의 열(烈)자를 쓰는 ‘열의 사랑’이다. 후세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겐 뜨거운 사랑보다 더 뜨거움을 주는 단어가 됐다.

“박열(1902~1974)과 후미코(1903~1926)는 ‘조선인 독립운동가와 일본인 아내’로 정형화돼 근대사의 변방에 붙박여 있었다. 어쩌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그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후대에 기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292쪽 , 작가의 말>

작가 김별아는 말한다. 박열은 아나키스트이면서 허무주의자이고, 테러리스트이면서 시인이고, 한 여자를 지극히 사랑했으나 잃어버려야 했던 남자라고.

후미코는 학대받은 유년의 상처 때문에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다 한 남자를 만나 삶과 사랑을 일치시킨, 그러나 가장 빛나는 순간 새벽이슬처럼 지상에서 사라진 여자라고.

작가 김별아는 박열과 후미코의 전 생애를 추적하며 국적을 뛰어넘은 사랑이 우연이 아닌 운명적이었음을 말한다.
 
작가는 관동대지진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도쿄에서 7백여명, 가나가와현에서 1천여명, 사이타마현과 지바 현에서 각각 2백여명…. 일본 전역에서 6천6백여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일본인들에게 사냥을 당했다.

바로 관동대지진에 이은 기괴한 소문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 일본은 이렇게 조선인을 사냥하고 대외적으로 적당한 근거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만든 게 천황 암살 음모였다.

둘은 다다미 6장짜리 단칸방이나마 함께였기에 행복했던 시절도 잠시, 일본 천황 암살을 시도했다는 ‘대역사건’의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다. 박열은 고압적인 대일본제곡 재판정에서도 조선 선비의 예복 차림을 하고 조선말을 쓰는 등 유례없는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일본과 일본인을 보는 단편적인 글이 눈에 띈다. 박열이 옥중 단식투쟁을 하자 교도소장이 놀라 ‘사고’라도 나면 자신의 입장이 곤란하다고 한다.

“아무리 강고한 조직에 속해 있다 해도 제복을 벗으면 그 또한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다. 일본인의 정신을 장악한 집단의식과 폐쇄성은 그런 약점을 숨기고자 하는 버둥질의 결과물이었다. 그들은 배려에 익숙하고 친절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배려와 친절의 밑바닥에는 복종과 눈치라는 압박감이 깔려 있다” <229쪽> / 엄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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