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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 피플] 김난주 번역가 “이제는 번역 인생 25년… 요시모토 바나나와는 식사하며 맥주 한잔 곁들이는 사이”

기사승인 2017.07.11  15: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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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은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신작 장편소설 『위험한 비너스』로 돌아왔다. 지금껏 작가가 선보인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미스터리가 오락성 짙은 서사로 펼쳐져 출간 이틀 만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 소설의 또다른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도 『태엽 감는 새』, 『1Q84』 등 기존의 장편소설 세계관을 잇는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로 출격을 앞두고 있다.

어느새 추리소설을 중심으로 순수문학에서 라이트노벨(애니메이션 풍의 장르소설)까지 일본소설들이 국내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올해 상반기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원작 소설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기린의 날개』는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5위에 올랐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을 양산하고 있는 일본 소설을 말할 때 김난주 번역가를 빼놓을 수 없다. 

김난주 번역가는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한 뒤 쇼와여자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그를 번역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결정적 계기였으며, 데뷔작도 하루키의 『일각수의 꿈』(1992)이다. 

그는 이 작품을 번역하던 때를 이렇게 추억한다. “벌써 25년 전 일인데 작업 당시의 내 모습이 새삼스레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때 내 옆에는 돌이 채 안 된 둘째아이가 새근새근 잠자고 있었고, 세살 난 첫째아이는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깡총거렸다. 나는 널찍한 교자상 앞에 앉아 원고지에 만년필로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그렇게 쌓인 2800매의 원고지를 보자기에 싸서 오른손에 들고 왼손으로 첫째아이의 손을 꼭 잡고 출판사를 찾았다”

그렇게 번역가의 길로 들어선 김난주는 지금까지 왕성한 번역 활동을 펼치고 있다. 번역한 일본 소설(성인 단행본)만 해도 200권이 훨씬 넘고, 아동 문학도 상당수 번역했다. 주로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의 작품들을 번역했고 최근작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 『목숨을 팝니다』 등이 있다. 

지난 6월 22일, 화정역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요즘 번역하고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묻자 “그냥 일을 하고 있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라 답하고, 인터뷰를 마친 뒤 집에 돌아가서 번역 작업을 이어갈 것인지 묻자 “오늘 저녁은 또 어떻게 펼쳐질지 몰라요”라 말하는 쿨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 예전하고 번역 환경이 많이 달라졌겠다 
“파카 만년필로 원고지에 검은 잉크 뚝뚝 흘리며 번역하던 시절이 있었다. 문학도 감성에 젖어있었다. 그러다가 3년째 되던 해에 급성 축농증이 왔다. 하루 종일 고개를 숙이고 작업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코가 막히고 머리가 띵해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때부터 원고지를 포기하고 컴퓨터를 쓰고 있다” 

- 번역은 외로운 작업이다 
“맞다. 외롭고 독립적인 작업이다. 협업도 할 수 없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내가 투자하는 시간이랑 작업량이 비례한다. 내가 엉덩이 붙이고 번역한 시간만큼 분량이 나온다. 지금이야 경력이 있으니까 속도는 빨라졌다. 그래서 웬만하면 혼자 있을 때 작업하려 한다. 또, 심리적으로 자기 통제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지루한 작업이고, 사람과의 접촉이 끊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부분은 엄마한테 감사하다. 내게 강철체력과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는 성격을 물려주셨다. 둘째아이한테도 고맙다. 어릴 때는 젖만 물려주면 새근새근 자서 일을 도와줬다” 

- 번역하다 막힐 때 노하우 있나
“막힐 때는 멈추고 쿨링타임을 갖는다.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러면 억지로 하지 않고 나 자신을 내버려 둔다. 다만, 왜 이게 막혀서 멈추게 됐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새로운 단어, 적절한 단어가 있을 것 같은데 떠오르지 않으면 설거지를 한다든가 화분에 물을 준다든가 고양이 밥을 주다 보면 머릿속에 그 단어가 불현듯 떠오른다. 억지로 앉아서 하면 안 된다. 옛날 같으면 계속 앉아서 머리를 쥐어짰겠지만 이제는 많은 스킬이 생겼다”

-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나
“예전에는 걷기 운동도 하고 스쿼시도 꽤 즐겨했다. 그런데 허리가 안 좋은 상태에서 스쿼시 하다 보니 탈이 났다. 지금은 라이딩의 맛을 알아서 자전거 타고 강변이나 아라뱃길 옆을 달린다. 본격적으로 탄 지는 2년 정도 됐다. 독립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주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을 선호한다. 자전거도 혼자 타는 날이 많다. 내가 원할 때 바로 할 수 있는 운동, 끝난 뒤 바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운동이 좋다” 

- 잘한 번역이라는 게 있나
“번역은 매뉴얼이 있는 작업이 아니다. 번역하는 사람이 텍스트를 1대 1로 마주한 채 다른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다. 단순한 작업일 수 있지만,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 다만 번역의 특성상 10년 전 번역한 작품을 10년 뒤에 번역하면 그 결과물이 다를 수 있다. 번역할 때의 환경과 개인적인 심리상태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문의 뜻을 해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또, 번역의 세계는 미궁이다. 제3자가 자신이 생각한 번역의 정의에 맞춰서 번역물을 보다 보면 오류로 가득 차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럴 때 문법적으로 틀렸다 지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 번역은 틀렸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 번역할 때 작가와 소통하는 편인가
“번역가에게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그 작품을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미 작품에 녹아 있다. 그래서 나는 궁금해 하지 않는다. 번역을 하는 내게는 작품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작가는 커피라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거다. 내놓은 다음 작가도 커피를 바라본다.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람들이 그 커피를 감상할 수 있도록 언어적으로 매개하는 역할이다. 해설하고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다” 

 

- 번역은 직역인가 의역인가
“직역과 의역으로 구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모든 언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단어를 담고 있는 그릇이 다 다르다. 예를 들어, 동그란 틀과 마름모꼴 틀이 있다. 번역은 동그란 틀 안에 담긴 것을 마름모꼴 틀 안에 담는 것이다. 서로 다른 모양의 틀인데 1대 1 대응이 가능할 리 없다. 모든 언어는 서로 완벽하게 대응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는 ‘테이블’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밥 올려놓고 먹는 판’으로 설명해야 한다”

- 주로 어떤 작가의 작품을 번역했나
“히가시노 게이고, 무라카미 하루키, 에쿠니 가오리 등 다양하지만 요시모토 바나나 작품은 거의 전부 번역했다. 번역을 한번 하면 편하고 작가의 경향을 알게 되니까 다른 작품을 또 번역하는 경우가 있지만, 바나나의 경우는 내가 번역해 주는 것을 원했다. 일본에 가면 간혹 만나 식사도 하고 맥주도 곁들인다. 바나나가 한국을 좋아해 자주 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한 매체의 설문 결과에 따르면 작가-번역가 궁합에서 요시모토 바나나와 김난주 번역가가 97%의 높은 궁합률을 보였다)” 

- 아동 문학 번역하는 건 어떤가
“아동 문학과 소설 번역은 정말 다르다. 번역할 때 마음조차 다르다. 양쪽 다 상상력이 필요한데, 소설은 어른들이 노는 것을 상상하고, 아동 문학은 아이들이 노는 것을 상상한다고 보면 된다. 그림책 번역 시작한 게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 때다. 어느새 두명 다 성인이다. 아이들 언어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다행히 늦둥이 조카가 태어나고, 조카들의 자녀들이 태어난다. 그 아이들의 말투를 관찰하려 한다” 

- 일본소설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성향이 정말 다양해졌다. 하지만, 질적인 부분을 놓고 보면 1980년대 말~1990년대에 소개된 작품의 수준이 더 높다. 그 책들은 1970~80년대 일본에서 쓰인 문학 작품이다. 1960년대 격변하던 일본 사회를 겪은 작가들이 썼다는 것이다. 자양분이 풍부할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지금의 작가들은 버블이 꺼진 이후 무력한 시대를 경험한 이들이다. 예전에 비해 상업적인 것을 지향하는 것 같다. 이 또한 흐름이고 시대 반영이라 생각한다. 일본의 추리소설이 여느 때보다 많은 인기를 끄는 것은 사실이다” 

- 번역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정말 번역가가 되고 싶은 건지, 왜 번역이 하고 싶은 건지 자기 검증을 거쳐야 한다. 한 남학생이 강연장에서 물어보더라. 정말 번역가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물었다. 수입 일정하지 않다. 일이 올지 안 올지 모른다. 한작품 끝내면 2개월간 일거리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하고 싶다면 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번역가의 위상이 그리 높지는 않다. 일본 문학 번역에 있어서 인터뷰할 만한 사람이라고 해서 나를 찾아오는데, 그래도 내가 말하는 것이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갖지는 않는다. 내일은 조금 더 좋아지기를 바란다”

 

김난주 번역가와 인연 있는 책 3권

■ 요시모토 바나나 『바나나 키친』

김난주 번역가의 번역만을 고집하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다. 그의 매일을 엿볼 수 있는 소소하고 따스한 식탁 일기로, 저자의 아이가 두살 반에서 여섯살이 되는 동안 쓴 글들을 모았다. 한밤중에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맛있었던 아버지의 오코노미야키, 각별한 언니가 만들어 준 크로켓, 여행지에서 기울인 달콤한 와인, 단골 가게의 따끈한 국물 등 10가지 먹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바나나와 번역가가 먹방 여행을 다니는 이유도 짐작이 간다.

■ 히가시노 게이고 『천공의 벌』

지난해 9월 번역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국민을 볼모로 원전 파괴를 요구하는 헬기 납치범과 일본 당국 간에 벌어지는 피 말리는 심리전을 그렸다. 이공계 출신인 작가는 헬기와 원전에 관한 전문 지식을 동원해 생생한 현실감과 밀도 있는 구성으로 사건을 숨 가쁘게 전개해 나간다. 취재와 연구에만 3년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번역가도 이 작품을 번역할 당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한다. 

■ 나카야 미와 『도토리 마을의 서점』

『까만 크레파스』의 저자 나카야 미와가 선보인 유아를 위한 직업 그림책 시리즈 「도토리 마을」. 놀이 가게, 서점, 유치원, 경찰관 등 다양한 시리즈가 출간됐고, 서점 편에는 저자가 도시의 대형 서점, 동네 곳곳의 여러 작은 서점을 돌며 실제 있었던 에피소드와 취재하며 들은 이야기들을 담았다. 김난주 번역가는 이 시리즈를 꾸준히 작업해 오고 있다. 앙증맞은 캐릭터와 친숙한 공간 묘사가 돋보인다. / 이정윤·황은애 기자, 사진=이태구 기자

* 이 기사는 격주간 독서신문 1627호 (2017년 7월 10일자)에 실렸습니다.

이정윤 기자 jylee9395@readersnews.com

<저작권자 © 독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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