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읽기 좋은 책 ‘메트로 북’] 『맨홀』
[지하철에서 읽기 좋은 책 ‘메트로 북’] 『맨홀』
  • 황은애 기자
  • 승인 2017.08.04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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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 책 표지를 열면 책을 보기좋게 쌀 수 있는 겉 포장지가 된다.

[독서신문] 아버지는 다 좋은가, 라는 질문은 어리석고 때로는 상대에 비참함을 안길 수도 있다. 그 비참함은 경제적 이유나 무관심에서 비롯될 수도 있으나 치명적인 것은 가정폭력이다. 

특히 술 마시고 폭행을 일삼는 행위는 자녀들에게 살의를 부르기도 한다. 술 한잔이 폭력을 부르고 술 두 잔이 가정을 뭉갠다. 자녀들은 숨을 곳이 없다. 많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도피하는 자매, 남매의 모습은 그래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세습되는 가정폭력
어린 가슴에 대못을

몰래 오랫동안 숨겨온
‘맨홀’의 어두운 기억

책은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로부터 상처받은 ‘나’의 이야기다. 고등학교에서 웃고 떠들며 공부해야 할 19살 ‘나’가 청소년 보호감찰소 ‘한마음 청소년 센터’에서 딱딱 맞춰 짜인 시간표대로 쳇바퀴 굴리듯 사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그 안에서 재활 치료로 상담을 받으며 ‘나’의 어두운 과거를 기억 저편에서 끄집어내 곱씹는다.

‘나’에겐 아버지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존경받는 소방관이었던 아버지는 가족에게 칼부림하며 살해 협박까지 했다. 그런 아버지를 피해 누나와 도망쳐 나와 간 곳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어두운 맨홀 안. 그곳에서 안도감을 느낀 ‘나’는 종종 맨홀을 찾는다. 비록 아버지는 순직하셨지만, ‘나’는 그에 관한 물건이나 말만 들어도 끔찍이 싫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만난 비행 청소년들과 떼를 지어 다니기 시작한다. 밤늦도록 집 밖을 배회하던 중 파키스탄 출신 외국인 노동자 일명 ‘파키’들을 마주쳤고, ‘나’의 무리는 파키들의 쑥덕거림이 기분이 나쁘단 이유로 시비를 걸었다. 그 후 악감정이 오가던 와중 그들이 ‘나’에게 시비를 걸며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 그래서 복수를 하려다 그만 살인을 저질러버리고 만다.

아버지란 사람에게 잔혹한 폭력을 당해 마음에 상처가 깊이 패인 여렸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 노동자에게 욕설을 내뱉고 폭력을 행사했다. 이런 현상은 뉴스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약자에게 강한 사람이나 가정폭력에 시달린 아이가 자라서 자신의 아이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맨홀』  
박지리 지음 | 사계절 펴냄 | 280쪽 | 13,000원 (126×190mm)

나는 아주 크게 소리를 내지르며 누나를 향해 손에 잡히는 대로 무언가를 집어 던졌다.…한참 후 누나는 이렇게 말했다.…“그 사람이 했던 짓을 똑같이 하는구나……. 닮은 얼굴로.”<72, 73쪽>

엄마는 처음으로 진실을 얘기하고 있다. 맞은 자국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시선을 피하던 얼굴 대신 나는 눈물과 두려움으로 범벅이 된 엄마의 맨얼굴을 본다.<277, 278쪽>

가정폭력은 세습된다. ‘나’ 또한 원치 않았지만 결국 아버지를 닮아갔다. 자기 안에 괴물처럼 도사리고 있는 구멍에 빠져 버린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아주 오랫동안 숨겨온 ‘맨홀’의 어두운 기억은 독자들에게 동정과 연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저자는 맨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발밑에 있는 맨홀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글을 쓰는 동안 우리가 사는 곳이 무수히 많은 맨홀들로 덮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소설은 그 많은 맨홀들 중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 황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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