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북] 22인의 초단편 소설집 『이해 없이 당분간』, 커피가 식기 전에 다 읽는 행복 “짧아도 괜찮아”
[메트로 북] 22인의 초단편 소설집 『이해 없이 당분간』, 커피가 식기 전에 다 읽는 행복 “짧아도 괜찮아”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9.15 1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김금희, 김남숙, 김덕희, 김연희, 김종옥, 박솔뫼, 백가흠, 백민석, 손보미, 송지현, 오수연, 이시백, 이연희, 이제하, 임현, 임승훈, 정용준, 조수경, 조해일, 조해진, 최정화, 한창훈. 22명의 소설가를 한 권으로 만나는 건 기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제하, 조해일 작가도 펜을 들었다. 이 시대 한국 문학을 이끄는 이들의 “통렬함, 기발함, 깊음”(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두루 읽는 것은 단순히 읽는 재미를 넘어선다.
 
출판사 ‘걷는 사람’이 펴낸 '짧아도 괜찮아' 시리즈 1권 『이해 없이 당분간』이 이처럼 많은 소설가에게 초단편 소설을 쓰게하는 신선한 시도를 보였다. 한 편 길이가 8~10쪽이다. 빠르면 10분, 길어야 15분이면 읽는다. 커피가 식기 전에 한 편 다 읽을 수 있다.

이시백 소설가, 김이구 문학평론가의 ‘기획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절망의 시대를 살고 있다”면서 세월호, 경찰 물대포, 탄핵, 국정교과서, 블랙리스트를 언급하며 “곳곳에 널린 절망이 자꾸 우리를 쓰러뜨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이 “당연히 실패하고 말았다. 무수한 희망이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절망만으로 가득한 시절은 없었다. 희망만으로 가득한 시절도 없었다”고 하며 이 소설집은 그래서 “우리 시대의 희망과 절망을 두루 기록한 작품집”이라고 했다.  

『이해 없이 당분간』
김금희 외 21명 지음 | 걷는사람 펴냄 | 236쪽 | 12,000원 (112×185㎜)

2001년 등단한 백가흠의 「취업을 시켜드립니다」는 청년 취업을 둘러싼 국가권력의 사기 비슷한 무책임, 이를 이용하는 업체, 그리고 속절 없이 당하는 청춘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한다고 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미래가 온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주인공 스물다섯의 사지멀쩡한 ‘김’은 정부가 추진하는 해외 취업 알선 프로그램에 따라 그리스 한인 무역업체에 취직이 된다. 주변의 축복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한인 게스트하우스. 계획은 엉클어지고 희망은 날아가고…. 그에게 남은 건 아테네의 강렬한 햇빛 뿐이었다.

투표권을 사고 파는 기발한 발상의 소설도 있다. 2013년 등단한 김덕희 「배를 팔아먹는 나라」다. 선거 때마다 투표율이 반토막나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책위를 만들어 투표권을 사고 팔 수 있게 개헌안을 만들었다. 슬로건은 단순 명쾌하다.

“투표가 밥 먹여주냐” 미국 유명 토크쇼 진행자가 한국 상황을 비꼬았다. “한국은 아주 좋은 조선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원래부터 자기들끼리 배를 사고파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의 B 발음(boat)이 종종 V와(vote) 구분되지 않으니 코리안들은 오해말라는 당부까지 했다.

고달픈 청춘의 주인공이 많다보니 시내버스, 광역버스가 소설 분위기를 살린다. 김금희 「그의 에그머핀 2분의1」에는 1000번 광역버스를 타고 다니며 차 안에서 아침을 해결하는 선미가 나온다.

그녀가 즐겨찾는 김밥집은 학원 수강생으로 붐비고 그들 대부분은 마흔이 넘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우울하게 한다. “그래야 직장에서 버틸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목이 메었고 청양고추를 넣은 멸치국물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 기분은 더 칼칼해졌다”

아침을 해결하는 광역버스가 있다면 데이트 장소로 그만인 273번 시내버스도 달린다. 2014년 등단한 임현은 「이해 없이 당분간」에서 시내버스가 “비용도 별로 들지 않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이 냉난방의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까, 멀미만 없다면 그만한 데이트 장소도 없”다고 했다.

애인과 이별한 ‘나’는 오래 걷기도 하는데 한번은 늦은 밤 비가 갑자기 쏟아져 우산도 없기에 아무 버스나 탔다. 그런데 바로 273번 버스였다. 나는 버스나 지하철 밖에 상상하지 못했지만 애인은 그렇지 않았다. “다만 나를 배려해 그랬다는 것.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서러워 눈물이 났다.”

대부분 소설에 절망이 안개처럼 서려있고 희망은 닻을 내린 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그 절망을 노래하고 응시할 수 있어야만 희망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하고 있다. 이게 바로 이 소설집의 매력이다. 그러고보니 “소설은 짧아도 괜찮다” / 엄정권 기자

◆ 『이해 없이 당분간』에 작품을 실은 소설가 22명을 출판사 도움으로 소개한다.

△ 저자 김금희는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가 있다. 2015년 젊은작가상,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 저자 김남숙은 2015년 『문학동네』로 등단.

△ 저자 김덕희는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급소』가 있다.

△ 저자 김연희는 2009년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하며 등단했다. 2013년 「트란실바니아에서 온 사람」과 「블루 테일」이, 2014년 「〔+김마리 and 도시〕」와 「너의 봄은 맛있니」가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 문학 분야(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선정되었다. 2016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되어 제작 지원을 받았다.

△ 저자 김종옥은 201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거리의 마술사」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거리의 마술사」로 제4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 저자 박솔뫼는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장편소설 『을』『백 행을 쓰고 싶다』『도시의 시간』을 펴냈다. 문지문학상,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했다.

△ 저자 백가흠은 2001년 서울신문으로 등단.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 『힌트는 도련님』 『사십사』, 장편소설 『나프탈렌』 『향』 『마담뺑덕』이 있다 .

△ 저자 백민석은 1995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소설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혀끝의 남자』, 장편소설 『헤이, 우리 소풍 간다』 『공포의 세기』, 미술 에세이 『리플릿』이 있다.

△ 저자 손보미는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 수상,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이 있다.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년 젊은작가상, 2014년 젊은작가상, 2015년 젊은작가상,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21회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 저자 송지현은 2013년 동아일보로 등단.

△ 저자 오수연은 1994년 『현대문학』 으로 등단. 장편소설 『돌의 말』 『부엌』 『난쟁이 나라의 국경일』, 소설집 『빈집』 『황금지붕』, 청소년소설 『라일락 피면』(공저), 동화 『선물』, 보고문집 『아부 알리, 죽지 마-이라크 전쟁의 기록』, 인문서 『세계신화여행』(공저) 등을 썼다.
2003년 한국작가회의 이라크 전쟁 파견 작가로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 다녀왔으며, 팔레스타인 현대 산문 선집 『팔레스타인의 눈물』, 팔레스타인과 한국 문인들의 칼럼 교환집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를 기획·번역하여 펴냈다. 한국일보문학상, 거창 평화인권문학상, 신동엽창작상, 아름다운작가상 등을 받았다.

△ 저자 이시백은 1988년 『동양문학』으로 등단. 소설집『갈보 콩』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 『누가 말을 죽였을까』 『벌레들』(공저) 『응달 너구리』, 장편소설 『나는 꽃도둑이다』 『사자클럽 잔혹사』, 산문집 『당신에게, 몽골』 이 있다. 제1회 권정생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2014 거창평화인권문학상과 제11회 채만식문학상을 받았다.

△ 저자 이연희는 2009년 경인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저자 이제하는 1957년 『신태양』, 1961년 한국일보로 등단. 소설집 『초식』, 『기차, 기선, 바다, 하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장편소설 『열망』, 『유자』, 『진눈깨비 결혼』, 시집 『저 어둠 속 등빛들을 느끼듯이』, 『빈 들판』 등이 있다. 이상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 편운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저자 임현은 201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단편 「고두叩頭」로 제8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았다.

△ 저자 임승훈은 201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 저자 정용준은 2009년 『현대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굿나잇, 오블로」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장편소설 『바벨』이 있다. 2011년, 2013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 저자 조수경은 2013년 서울신문으로 등단. 소설집 『모두가 부서진』이 있다.

△ 저자 조해일은 1970년 중앙일보로 등단. 소설집으로 『아메리카』 『왕십리』 『매일 죽는 사람』 『지붕 위의 남자』 『임꺽정에 관한 일곱 개의 이야기』, 장편소설 『겨울 여자』 『갈 수 없는 나라』 등이 있다.

△ 저자 조해진은 200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아무도 보지 못한 숲』 『로기완을 만났다』 『여름을 지나가다』가 있다. 신동엽문학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무영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저자 최정화는 2012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이 있다. 2016 제7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 저자 한창훈은 1992년 대전일보로 등단.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청춘가를 불러요』 『나는 여기가 좋다』 『그 남자의 연애사』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장편소설 『홍합』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열 여섯의 섬』 『꽃의 나라』 『순정』, 산문집 『내 밥상위의 자산어보』 『내 술상위의 자산어보』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등이 있다. 한겨레문학상, 요산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