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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45)] 독일인이 본 박정희와 태권도

기사승인 2017.10.11  09: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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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함부르크대 한국학 전공 게자 파이글(Gesa Feigl) 졸업논문 작성기 구술대담

<독서신문>은 창간 48주년을 맞아 신향식 객원기자(신우성글쓰기본부 대표)의 ‘독일 글쓰기 교육’을 연재합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비스바덴,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등 독일 현지 취재와 국내에 체류 중인 독일 교육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독일의 선진적인 글쓰기 문화를 소개합니다. 신 기자는 하버드대와 MIT, UMASS대 등에서 미국 글쓰기 교육을 심층 취재해 보도한 바 있고, 대학과 고교에서도 글쓰기 및 소논문, R&E, 보고서 작성법을 체계 있게 지도하는 논증적 글쓰기 교육의 전문가입니다. / 편집자 주(註)

일본 도쿄에서 만난 게자 파이글 씨

[독서신문] “저는 글쓰기를 잘 못합니다. 대학 졸업 논문을 쓸 때도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논문을 쓰면서 얻은 게 있습니다. 바로 제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겁니다. 이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봅니다. 자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실천하는 자세를 갖추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요”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한국학과를 졸업한 게자 파이글(Gesa Feigl․27) 씨는 자신을 ‘글치’로 소개했다. 글쓰기를 잘하지 못해 보고서와 졸업논문을 쓸 때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게자 씨는 “글쓰기를 하면서 나만의 관점을 세울 수 있기에 무척 중요하다”고 말했다.

게자 씨가 쓴 논문은 ‘박정희 정부의 태권도 정치도구화 연구’다.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태권도를 수련했고, 한국학과에 입학했으며, 졸업논문도 한국에 관한 주제로 잡았다. 함부르크대학교 한국학과에서 태권도를 주제로 논문을 쓴 사례가 없어 게자 씨의 논문이 현지 교민사회와 유학생, 교환학생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논문을 집필했다고 해서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자기 생각을 완벽하게 설정하는 것도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저는 논문을 쓴 이후로 언론 보도를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았고, 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취사선택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자료도 조사하고, 글 전개 방법도 구상하면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 ‘박정희 정부의 태권도 정치도구화 연구’ 논문으로 관심 끌어

게자 씨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도 교환학생을 지낼 당시 ‘김게자’, ‘게자 누나’, ‘게자 언니’란 예명이 있었을 정도로 유명 인사였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한국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유럽인들에게 낯설고 짓궂은 한국의 대학가 문화를 흠뻑 받아들였다.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 등 뒤에서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하는 소리를 들으면 한국인이 말하는 것으로 착각될 정도였다. JTBC의 ‘비정상회담’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다니엘 린데만이란 독일 청년에 견주어 게자 씨가 ‘여자 다니엘 린데만’으로 통하기도 했다.

게자 씨를 2015년 10월 독일 함부르크 중앙역 인근에서 만나 첫 구술대담을 하고, 지난 7월 초 일본 도쿄에서 만나 추가로 대담했다. 게자 씨는 현재 도쿄에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판매영업 실습을 하고 있다.

“독일에서 글쓰기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히틀러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독일 사람들은 히틀러 시대 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명확하게 자기 생각을 갖지 못해서 히틀러가 하라는 대로 내몰림을 당한 것 같습니다. 자기 생각이 있었다면 많은 사람이 나치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국민들에게 자기 생각이 있으면 그 사회는 민주 사회로 발전합니다.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그것이 왜 옳은지 타당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토론하고 문제제기도 하면서 더 좋은 의견을 얻습니다. 이것이 민주 사회로 발전하는 길입니다”

게자 씨는 “자기 생각을 바탕으로 토론을 하면 다른 사람의 생각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주제로 토론하는 사례를 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고기를 먹지 말라고 너무 강하게 주장하면 오히려 더 반발을 삽니다. 그래서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이유를 차근차근 제시하면서 주장해야 합니다. 막무가내 주장은 ‘자기 생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말할 때 상대는 차근차근 그 주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배워 사회에 진출합니다”

게자 파이글 씨의 유년 시절

◆ “한국영화 보던 중 한국어 리듬과 발음 매력적으로 느껴져”

게자 씨는 우연한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일본영화와 중국영화를 즐겨보던 중 어감이 매우 아름다운 영화를 한 편 발견했다. 일본어, 중국어보다 리듬감이 묘했고 발음도 부드러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바로 한국영화였다. (영화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게자 씨는 “한국어 대사를 들으면 들을수록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하루빨리 배우고 싶어졌다”면서 “다행히 언어에 재능이 있어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뒤 게자 씨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태권도 수련에 들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에 관심이 커져 대학에서 한국학과를 전공하게 됐다. 취업하기에 유리한 전공은 아니었지만 관심 있는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논문을 작성해야 했다. 논문 길이는 학과마다 다른데 한국학과에서는 1만 자 분량의 논문을 완성해야 했다. 논문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몇 동기들은 논문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다시 심사를 받기도 했다.

“특히 저는 독일어로 논문을 쓰는 데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중학생 시절 미국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지냈는데 다시 독일로 돌아온 뒤에 독일어로 글을 쓰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졸업 조건으로 소논문을 요구해 작성해 보았지만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대학 논문 작성은 저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학문 연구가 체질이 아니었기에 수 개월간 논문에 쓰일 한국어로 작성된 자료를 찾고, 일일이 출처를 밝혀가면서 정리하는 작업은 매우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 태권도사범에게 받은 책에 동백림사건 실려 있어 논문주제로 연결

게자 씨는 박정희 정부가 태권도를 어떻게 정치도구화 했는지를 살펴봤다. 논문을 쓰면서 1967년의 독일 유학생 간첩단 사건(동백림사건)을 알게 됐고 재독 음악가 윤이상의 사연도 접했다.

게자 씨는 어느 날 태권도 사범에게 태권도 역사를 담은 책을 건네받아 읽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책에 동백림사건이 적혀 있었다. ‘어, 이건 또 뭐야?’ 하면서 관심이 갔다. 졸업논문 주제로 뭘 쓸까 고민하던 중 이 사건을 주제로 잡았다. 한국의 태권도 사범들이 동베를린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얼마나 관여돼 어떻게 고생했는지 알고 싶어 이 주제를 선택했다.

“핍박 받은 분들에게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이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제가 논문을 쓰니 한국 사람들이 이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태권도에 관해서 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동베를린 사건을 잘 몰랐습니다. 알고는 있겠지만 아마도 논문을 쓴 저보다는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일부 젊은 한국인들은 윤이상이란 음악가도 잘 몰랐습니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교정

◆ “반공 앞세워 반대파 탄압하던 박정희가 공산주의자였다니 신기”

게자 씨는 논문에 담은 내용을 구슬땀을 흘려가면서 이야기했다. 자료를 찾아볼수록 흥미진진했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지휘 하에 대규모 간첩 수사를 벌였고,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관련 인물들을 조사하기 위해 독일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을 불시에 한국으로 납치했습니다. 그 중에는 윤이상도 있어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졌나 봅니다. 다행히 윤이상은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년만 복역하고 독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게자 씨는 반공을 앞세워 반대 측 사람들을 탄압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48년에 공산주의 활동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점이 신기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 논문 주제에 더 빨려 들어갔다.

“독일 정부에서 재독 한국인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라고 박정희 정부에 요청했으나 보기 좋게 무시당했습니다. 그래서 외교적으로 마찰이 있었나 봅니다. 1958년 북한의 천리마운동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북한경제가 남한보다 크게 발전하고, 1960년대에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주창해 내부결속을 다졌습니다. 그러는 동안 박정희는 1961년에 군사정변을 일으켰고 ‘반공’ 외에는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내세울 만한 이념이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내부결속을 다지기 위해 다양한 분야로 노력해야 했고 그 중 하나가 체육의 활성화였습니다. 국민체육진흥법을 제정하고 태권도 발전방안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공산주의자였다고 하니 참 역설적입니다”

◆ 박정희가 음악가 윤이상 납치조사한 부당성, 논문에 집중 서술

게자 씨는 “논문에서 한국 정부가 윤이상을 납치해 조사하고 재판한 것이 과연 옳은지에 관해 집중 서술했다”면서 “3개월에 걸쳐 논문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또, “때로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논문에 알찬 내용을 담기 위해 힘들어도 견뎌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도 교수는 게자 씨에게 논문을 대폭 수정하라고 지적했다. 연구의 깊이가 부족하고 논문 형식에 맞지 않는다면서 보완하라고 요구했다. 게자 씨는 한숨을 쉬면서 논문을 최종 완성하기까지 무척 많이 고생했다고 털어놓았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졸업논문 때문에 고생합니다. 어떤 주제로 논문을 쓸지 고민하면서 교수와 의견을 나누고 자료도 찾아가며 준비하는데 정말 힘듭니다. 논문을 쓰고 교수에게 계속 지적을 받아가면서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합니다. 일부 학생들은 자료가 없어서 논문 작성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특정 주제를 잡고 논문을 쓰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쓰다 보면 자료가 없거나 예상하지 못한 난관이 있어서 울상을 짓습니다”

그러면 이렇게까지 고생해서 논문을 작성할 필요가 있을까. 게자 씨는 힘들긴 하지만 얻는 게 많다고 말했다.

게자 파이글 씨의 고교 시절

“논문을 쓰면 어느 정도 연구를 해서 결과를 내기도 하고 제대로 결과를 내지 못하기도 합니다. 결과가 나오든 나오지 않든, 교수님이 설명하는 것을 그냥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궁금한 것을 주제로 잡아 탐색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SNS를 많이 활용합니다. 저는 논문을 쓰면서, SNS 상의 자료를 바로 믿는 대신 조금 더 많은 관련 자료를 살펴보며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별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게자 씨는 졸업논문을 쓰면서 진로를 좀 더 확실하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글을 잘 못 쓰기 때문에, 깊게 학문을 연구하는 분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제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명확하게 확인하고 그에 맞춰 진로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로 뭘 하는 것보다는 손으로 뭘 만들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저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방향으로 진로를 설계했습니다. 제가 글쓰기에 관심이 없으니, ‘이건 못하겠구나’ 하면서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게자 씨는 완벽하지 못하지만 정성스럽게 작성한 논문을 드러내 보이면서 살포시 웃었다. / 함부르크(독일)·도쿄(일본)=신향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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