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VS 강철비, 문 대통령 VS 홍 대표
1987 VS 강철비, 문 대통령 VS 홍 대표
  • 권보견 기자
  • 승인 2018.01.14 09:2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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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野, 영화 선택으로 정치 성향 드러내…

[독서신문 권보견 기자]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용산 CGV에서 영화 <1987>을 관람한 것이 화제다. 대통령의 영화 선택에는 숨은 메시지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소재의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했고, 이번에 선택한 <1987> 또한 1987년 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서 시작해 6월 항쟁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이야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화운동을 담은 영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정치인의 영화 관람은 대중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한편 소통을 위한 매개체로 이용된다. 그들의 영화 선택과 관람평은 정치 성향을 상당 부분 반영하기 때문에 잘 뜯어보면 정책 결정에 숨은 메시지를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치인이 관람한 영화, 그리고 그들이 남긴 관람평은 늘 화두가 된다.

이번 <1987>도 예외는 아니다. 6월 민주항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제각각인 정치권에서 <1987>을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영화 관람 후 "역사는 긴 세월을 두고 뚜벅뚜벅 발전해 오고 있다. 우리가 노력하면 바뀐다"며 "정권교체를 하지 못해 여한으로 남게 된 6월 항쟁을 완성한 게 촛불 항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1987년에 개헌이 이뤄진 해라는 것에 초점을 뒀다. 안 대표는 지난 3일 이 영화를 당 지도부 및 당직자들과 단체 관람했다. "1987년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정말 중요한 이정표가 된 해이자 개헌이 된 해"라며 "대한민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민주화가 이뤄졌는지 그때의 정신을 되새겨 공감대가 형성되면, 올해 개헌논의에 더 많은 국민들의 열망이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1987> 대신 북한의 급변사태를 소재로 삼은 <강철비>에 더욱 관심을 보이고 있다. <1987>에는 ‘그런 영화도 있냐?’고 묻던 홍준표 자유 한국당 대표가 <강철비>는 보겠다고 했고, 나경원 의원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강철비> 상영회를 열어 단체관람에 나섰다. 홍준표 대표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 강효상 대표 비서실장은 "남한의 안보를 위해 전술핵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영화를 토대로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영화관에서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시작으로 6월 민주항쟁까지를 담아낸 <1987>과 북한 내에서 발생한 쿠테타로 남한이 북한 핵을 나눠 갖게 돼 남북이 안보균형을 이루는 과정을 풀어낸 <강철비>가 상영 중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987> 관람을 통해 빠른 개헌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보수층을 대표하는 자유한국당에서는 <강철비>를 통해 문재인 정권의 안보관을 비판하고, 남한의 핵 보유 당위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정치’, 그 시작점은?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해석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고, 정치인들 역시 이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개봉한 영화 <서편제>이다.

한국영화 최초로 관객 100만 명을 넘는 데는 당시 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대선 패배 뒤 정계 은퇴를 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귀국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이 컸다. 1993년 5월 1일 청와대 춘추관에선 김 전 대통령을 위한 <서편제> 상영회가 준비됐다. 김 전 대통령은 영화를 본 뒤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큰 감명을 받았다. 이 정도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되겠다. 문화 대국으로 가는 것도 신한국건설의 하나”라고 했다.

두 달 뒤인 그해 7월 13일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편제>를 봤다. 김 전 대통령은 “서편제가 나타내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한은 원한이나 절망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루어내려는 몸부림이다. 우리가 오랜 역사를 통해서도 중국화 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한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1년에 5·18 민주화운동 등을 다룬 최초의 극영화 <부활의 노래>를 관람하며 ‘영화 관람 정치학’의 시초를 알렸다.

김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대통령들이 선택한 영화를 보면, 그들이 지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주로 어려운 고비를 극복한 역사 기반의 영화들을 택했다. 이순신 장군의 극적인 활약을 담은 <명량>부터 <국제시장>과 <인천상륙작전>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세 영화 모두 개봉 이후 애국 코드를 지나치게 남발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성공 신화에 관심을 뒀다.  당선인 시절,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대표 팀의 실화를 다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했고, 재임 때는 <워낭소리>를 본 뒤 “주인공 할아버지가 농사를 지어 9명의 자녀를 공부시킨 사실”을 언급하면서 “나라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강조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화려한 휴가>를 관람하며 눈물을 보인 바 있다.

문 대통령 효과, ‘역주행 흥행’과 ‘박종운 궁금증’ 남겨

문재인 대통령과 강동원의 특별 무대인사는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작품성, 메시지, 배우들의 열연 등을 모두 갖춘 <1987>이 <신과함께>의 기세로 흥행에서 아쉬움을 남기던 찰나, 반전의 역주행이 펼쳐졌다. 개봉 13일 만인 지난 8일 <신과함께>를 넘어서 예매율 1위를 차지하며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이던 <1987>은 마침내 지난 10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다.

영화 <1987>이 흥행 돌풍을 이어가면서 영화의 실제 주인공 박종철 열사와 그가 지키려던 선배 박종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영화가 그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박종철 열사가 불법 체포되고 치안본부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 수사관들에게 고문·폭행을 당해 사망한 사건이다. 수사관들은 1985년 서울대 민주화 추진 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된 박종운의 소재를 박종철 열사에게 추궁했지만, 박종철 열사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박종철 열사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박종운은 2000년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에서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으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선거까지 세 번 모두 낙선했다. 일각에서는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항거하던 운동세력, 그리고 수많은 열사들이 죽고 다치며 지키려 했던 인물이 ‘불의’로 여겨왔던 세력과 함께하는 것에 슬픔을 표하기도 했다.

지난 11일, JTBC <썰전>에 우상호 의원이 출연해 박종운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종철 열사가 사망하던 당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군부독재 반대시위를 이끌었던 우상호 의원은 “민주화 운동을 했던 분들이 정당을 선택해서 정치 활동을 펼치는 것에 대해 변절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밝히면서도 “박종운이 그 당을 선택해서 갔을 때 박종철 열사의 유가족이 받은 상처가 너무 컸다. 내 아들을 죽인 사람들과 같은 진영으로 갔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어했다”라며 박종철 열사의 가족들이 느낀 아픔을 전했다.

또한 “박종운은 박종철 열사를 생각하면 정치를 안 하든가, 다른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정치인의 영화 선택 및 관람평은 국민들의 관심거리이자 그들의 정치색을 알 수 있는 잣대이다. 또한 앞으로의 국가 정책 방향도 ‘미리보기’ 할 수 있는 중요한 팁이다. 영화 <1987>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올 정치색 짙은 개봉작들이 관람객들에게 영화의 재미 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정치적 팁’을 안겨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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