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검찰, 모든 사회가 외면한 ‘몰카 성범죄’
미디어·검찰, 모든 사회가 외면한 ‘몰카 성범죄’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1.17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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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금지 홍보대사 ‘무한도전’도 몰카 촬영…
피해자만 영원한 고통
<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한 여성이 신음소리를 내며 잠에서 깬다. 또 악몽이다. 벌써 3년째다. 늘 비슷한 꿈이다. 자신이 발가벗은 모습이 찍힌 영상을 사람들이 웃으며 보고 있다. 변태 같은 웃음을 짓는 사람들은 여성을 향해 손가락질하기 시작한다. 잠이 들면 이런 악몽을 꾸기 때문에 늘 3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한다.

출근길에 집 앞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여성은 한 여름임에도 두꺼운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출근한다. 거금을 들여 개인이 원하지 않는 인터넷 기록을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에게 자신이 찍힌 영상을 다 지워달라고 부탁했지만, 디지털 장례사 왈, 완벽하게 지울 수는 없고, 또 영상이 노출된 사이 다른 누군가가 해당 영상을 저장해서 재유포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그가 불법촬영, 소위 ‘몰카’를 당한 것은 3년 전 직장 화장실에서였다. 여기서 용변을 보다 몰래카메라에 찍힌 여성은 그 외에도 100명이 넘는다. 그와 같이 ‘몰카’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9시간 근무하는 동안 건물 내 화장실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심지어 생리기간인데도 생리대를 교체하기 위해 화장실에 가지 못해 참는다고 한다.

흔한 ‘몰카’, 불법촬영 피해자들의 일상이다. 기자가 만난 불법촬영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그들은 “당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그 사건 후로 정신과도 다니고 있어요”, “다들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카메라 좀 찍힌 거 가지고 그러냐고”, “교통사고면 표라도 날 텐데, 마음에 난 상처라서 혼자 끙끙 앓고 있어요. 차라리 교통사고가 나아요”라고 말했다. 사회는 자신들이 당한 끔찍한 고통을 쉽게 생각한다고.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사람을 불신하며 사회를 두려워했다.

 

처벌 약해… 벌금 내면 ‘몰카’ 가능

‘판결’조차 그들의 편이 아니다. 불법촬영 피해자들이 사회를 불신하는 첫 번째 이유는 ‘판결’이다. 한 피해자는 “저는 감옥에 갇힌 것처럼 끔찍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피의자는 기껏해야 벌금형이거나 집행유예에요.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세요?”라고 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법률상담을 하는 변호사는 “맡았던 카메라이용촬영죄 사건 중 실형이 선고됐던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처분, 합의했다는 이유로 벌금형 선고, 피고인이 범행사실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졌다”면서, “수사관, 검사, 판사, 심지어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변호사들조차 강간과 같은 심각한 성폭력에 비해 카메라이용촬영행위는 경미한 범죄라고 생각한다. 피해자들은 오랜 시간 고통 속에 사는데 비해 몰카 범죄자들은 쉽게 선처를 받는다. 싱가포르에서는 12회 몰카 촬영한 사람이 실형을 받는데, 우리나라는 왜 635회 몰카 촬영한 사람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성전 카페'...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고위직 경찰 출신 팀장 등 도우미 ‘빵빵’

법조인조차 불법촬영 피해자들의 편이 아니다. ‘성전카페’, ‘성난 남자’ 등 인터넷에 ‘성범죄 전문 카페’를 치면 쉽게 성범죄 전문 변호사들의 조언을 구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변호사들이 나서서 각종 성범죄 사건 해결을 돕는다. 글을 올리는 사람 대부분이 불법촬영 피의자거나, 성추행 피의자다. 한 피의자가 “아파트 창문을 열고 속옷만 입고 자는 여성을 찍다가 현장에서 적발됐고 이후 핸드폰 복원에서 화장실 몰래 카메라 2건, 불특정 다수의 치마사진이 여러 장 복원됐습니다. 사진은 유포한 적 없고, 초범이고 피해자 분과 합의했는데, 집행유예가 나오게 할 방법은 없을까요?”라는 식의 글을 쓰면 변호사 사무실에서 쪽지를 보낸다.

“카페 운영 관련 카페 스텝입니다. 님께서 카페에 올려주신 글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쪽지 드리오니 현재 진행 중인 사건 관련해서 해결은 되셨는지 만약 진행에 있어 순조롭지 못하다면 자문 등 도움을 드리고자 하오니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말씀 해주세요.” 이런 연락을 받은 피의자는 변호사 사무실에 연락을 하게 되고,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고위직 경찰 출신 팀장이 피의자 변호를 맡는다.

 

불법촬영 금지 홍보대사 ‘무한도전’... 조세호 몰카?

‘무한도전’ 등 각종 미디어들마저 ‘몰카’ 피해자들의 편이 아니다. 지난 14일 네이버 메인 화면에는 <‘조세호 기상캐스터 변신은’ ‘무도..소주 들이키게 한 몰카까지?’>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조차 불법촬영을 예능의 소재로 사용한다. 무한도전 맴버들이 서울경찰과 협업한 불법촬영 금지 홍보 영상이 인터넷에서 공유되고 있고, 지하철 화면에도 틀어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한 편의 잘 짜여진 ‘블랙코미디’가 아닌가하는 망상도 든다.

‘몰카’, 즉 불법촬영을 예능에서는 한낱 재미거리라고 생각하고, 언론에서는 ‘몰카’를 ‘문화’면에 톱기사로 낸다. ‘몰카’ 즉 ‘불법촬영’도 웃기면 되고, 조회수가 잘 나오면 된다. 한 피해자는 “방송에서 ‘몰카’ 하는 건 절대 못 보겠어요. ‘몰카’ 당했던 기억이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려요”라고 했다.

 

초소형 ‘몰카’, ‘용산 상점 판매 횡횡, 대형간판도 보란 듯이’

어제 기자는 컴퓨터를 수리하러 용산역 3번 출구로 향했다. 굴다리를 건너 밖에 나오자 선인상가 13동이 보였다. 아니, 13동이 먼저 보였다기보다는 ‘불법카메라, 특수 녹음기, 초소형카메라’라는 대문짝만한 글씨가 먼저 보였다. ‘성범죄’에 쓰이는 기기가 어떻게 저렇게 대문짝만하게 광고되고 판매되고 있는지, 기자가 취재하고 있는 엄연한 성범죄 피해자인, 불법촬영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절망적이었다.

기자가 들어간 선인상가 13동에서는 볼펜, 시계, 안경 등 카메라가 부착된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생활용품을 이용한 위장형 카메라가 성범죄에 악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팔리고 있었다.

 

못난 미디어와 사회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의 저자 오찬호는 그의 책에서 미디어와 사회의 영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었다.

“우리가 이미지에 주목하는 것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 동일한 사물이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더 나아가 ‘낭만적’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불쾌하게’, 그래서 ‘공공적’으로까지 생각한다. 과거의 사회 A, 현재의 사회 B를 사각형으로 그려보자. A사회는 담배를 ‘낭만’으로 기억하는 사회다. 그때의 담배는 ‘정신의 밥이고 가슴에 피는 꽃이고 원고지의 빈칸을 밝히는 불’이었다.” (97쪽)

“A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아이들 앞에서 담배 연기로 ‘도넛’을 만드는 등 쇼 타임가지 가졌다. 그것도 부엌에서 밥뚜껑을 재떨이 삼아. 만약 지금 이런 행동을 한다면 미개인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아이들은 아버지가 뿜는 담배 연기를 ‘뭉개구름’ 그 이상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효심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담배의 유해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의 담배는 냄새로 인해 야기되는 ‘불쾌한 이미지’가 아니라, ‘어른만이 할 수 있는’, 그중에서도 ‘남성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을 뜻했다.”(98쪽)

“A사회에서 담배는 ‘나쁘다’의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이미지가 더 강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담배냄새는 다르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 이처럼 사회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독하더라도 독하지 않게끔 생각하도록 하기 때문이다.”(99쪽)

“신문만 넘겨도 담배의 해악을 다루는 정보들이 개인을 압박하는 B사회에서 담배를 긍정할 여지는 없다.”(101쪽)

‘몰카’ 즉 불법촬영은 엄연한 성범죄다. 그럼에도 미디어, 법조계 등 우리 사회의 기둥 같은 존재들은 성범죄에 우둔하다. 진부한 얘기지만 ‘함부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성범죄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건 비단 취재기자 뿐 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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