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로 ‘밥’ 대신 ‘라면’… 라면의 어제와 오늘
생활고로 ‘밥’ 대신 ‘라면’… 라면의 어제와 오늘
  • 권보견 기자
  • 승인 2018.02.1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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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권보견 기자] 제이블랙이 지난달 22일 올리브 <토크몬>에 출연해 “댄스를 시작하고 첫 4년 동안은 거의 수입이 없었다. 학원에서 춤 레슨을 했었는데 그때 수업료가 6만원이었다. 학원이 3만원 가지고 내가 나머지를 가졌다. 한 달 수입이 3만원 이었다”며 힘들었던 과거를 털어놨다.

이에 생활이 가능했냐고 묻자 제이블랙은 “그 당시, 라면 하나가 540원이었다. 하루는 라면을 먹고 다음 날은 굶었다. 부모님께는 손을 벌릴 수 없어서 말하지 못했다”고 답하며 눈물을 흘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지난 2015년, 박나래가 <힐링캠프>에 출연해 생활고를 고백했다. 박나래는 “당시에 20만원, 3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았다. 돈이 없어 삼각 김밥과 컵라면을 엄청 먹었다”며 “하루는 야채 볶음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라면 후레이크를 불려 볶음밥을 해 먹었던 적도 있다”고 말하며 과거의 일을 회상했다.

2014년에는 손호준이 tvN <택시>에서 무명시절 힘들었던 생활고를 공개했다. 손호준은 “라면 하나를 두 개로 분리한 뒤 또 반으로 쪼갠다. 그 후 수프를 4분의 1씩 넣고 끓인다”며 “남은 국물은 버리지 않고 놔뒀다고 쌀을 넣어 죽으로 먹는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유명 연예인들의 무명시절 생활고 고백에 ‘라면’이 자주 등장한다. ‘생활고’와 ‘라면’ 그 역사는 196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량 문제 해결 위해 탄생한 ‘삼양라면’

삼양식품의 ‘삼양라면’은 우리나라 최초의 인스턴트식품이며, 55년간 국민에게 사랑받아온 장수 브랜드다.

1960년대 당시 우리나라는 6·25전쟁의 여파로 식량이 부족했던 시기였다. 삼양식품 창업자인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은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꿀꿀이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노동자들을 목격했고, 국내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본을 찾았다.

전 명예회장은 월간중앙 2009년 8월호 기사 인터뷰에서 “옛날 중국 구사에 식족평천(食足平天), ‘먹는 게 족하면 천하가 태평하다’는 말이 있어요. 중국 제왕들도 그렇게 말했고, 국민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어느 나라 국민이나 마찬가지예요. 먹는 게 제일이에요. (중략) 그런데 1960년대가 돼도 식량이 모자라 하루에 두 끼 밖에 못 먹어요. 그게 우리나라 실정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전 명예회장은 정부에게 지원금 5만 달러를 받아 일본으로 향했지만, 라면 제조 기술을 알려주는 대가로 큰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일본의 묘조(明星)식품 오쿠이 기요스미 사장의 도움을 받게 됐고, 1963년 닭고기 육수로 국물 맛을 낸 삼양라면 생산에 성공했다.

당시 일본에서 생산되던 라면의 중량은 주로 85g이었으나, 삼양식품은 굶주린 서민들을 위해 100g짜리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가격도 10원으로 측정해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물가를 보면 커피 35원, 담배 25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출시 초기 밀가루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가 많았던 탓에 삼양라면의 인기는 기대에 못 미쳤다. 심지어 라면의 면발을 실이나 플라스틱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삼양식품 직원들은 직접 무료시식 행사를 열면서 라면 맛 알리기에 나섰다.

이러한 노력 끝에 출시한 지 4년이 지난 1966년 11월, 삼양라면 판매량이 240만개를 넘어섰다. 이후 꾸준히 매출이 늘어 1972년 매출은 141억 원으로 집계됐다. 당시 삼양라면의 소비자가격이 22원임을 감안하면 1년간 약 7억 개가 팔렸다.

‘우지사건’ 위기 딛고 일어선 ‘삼양라면’

오랜 기간 ‘서민 음식’으로 사랑받아온 삼양라면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1989년 ‘우지(牛脂)파동’으로, 당시 검찰청에 “삼양식품에서 식용이 아닌 공업용 소기름으로 라면을 튀긴다”는 익명의 제보가 접수되면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이로 인해 삼양라면의 매출은 급격하게 하락했고, 라면 업계 시장 점유율이 60%에서 15%로 떨어졌다.

‘삼양라면 유·무해’의 끝없는 논쟁 끝에, 당시 김종인 보건사회부 장관의 ‘라면 무해 판정’을 계기로 여론이 진정됐다. 이후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삼양식품은 오명을 씻어냈다.

라면, 한국 넘어 외국에서도 인기

한국 라면이 중국과 미국 등 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지난해 라면 수출액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23일 관세청에 따르면 2017년 라면 수출액은 3억8,000만 달러로 전년(2억9,000만 달러) 대비 31.2% 증가했고, 2년 전이 2015년과 비교하면 74.1% 증가하면서 3년 연속 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지난해 라면 수입액 386만 달러와 비교했을 때 98.8배에 이르는 실적이다. 2017년 라면 주요 수출국은 중국(27.1%), 미국(10.8%), 일본(6.7%), 대만(5.5%), 태국(5.0%) 순으로 조사됐으며 중국은 지난 2013년 이후 라면 수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으로의 라면 수출액은 1억300만 달러로 사드 영향에도 불구하고 2015년 대비 166.1% 늘었으며, 태국으로의 라면 수출액은 1,900만 달러로 같은 기간 대비 675.2% 증가했다.

김윤식 관세청 통관기획과장은 “라면 수출이 쾌조를 보이는 것은 각국의 고유한 입맛을 겨냥한 마케팅 노력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경우 맵고 강한 맛, 일본은 간장·된장 맛, 인도네시아는 매콤·짭조름한 맛 등에 맞춰 현지화한 것과 동남아는 볶음, 북미는 비빔 라면 등으로 조리 방법을 다양화한 게 실적 호조로 이어졌다.

라면의 미래를 책임질 ‘컵라면’

한국농수산유통공사가 발표한 2016년 라면 소매시장 규모는 2조1,613억 원으로 2015년 1조9,591억 원보다 10.3% 성장했다. 이 가운데 봉지라면의 점유율은 66.5%, 컵라면은 33.5%를 기록했다.

점유율을 비교하면 6대4 정도지만, 컵라면의 성장세를 봤을 때 봉지라면을 넘어섰다. 지난 2012년 5,983억 원에 불과하던 컵라면 시장 규모가 2016년 7,249억 원까지 증가했다. 4년간 21.2%나 확대됐다. 반면 봉지라면의 4년간 매출 성장률은 5.4%에 불과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컵라면 시장이 확대된 원인에 대해 “1인 가구의 증가로 인해 간편식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라면 업체들은 시장 확대에 발맞춰 제품 다양화에 나서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상품은 ‘전자레인지 컵라면’이다. 라면 업계 관계자는 “개념은 용기면이지만 끓여 먹는 봉지라면의 효과를 낼 수 있을 정도로 면발이 쫄깃하다”며 “전자레인지 시간을 조절하면 취향에 따라 면발의 익힘 정도를 맞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9년 오뚜기가 전자레인지 조리용 ‘오동통면’을 출시한 데 잇따라 농심은 ‘신라면 블랙사발’을 선보였다.

두 업체는 라면 용기에서 차별을 두었는데, 농심은 즉석밥 용기로 사용되는 ‘폴리프로필렌(polypropylene)’을 적용했고, 오뚜기는 스마트그린컵(발포재질)을 사용했다. 두 재질 모두 전자레인지로 조리해도 용기가 녹지 않으며,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컵라면 시장의 성장세만큼 컵라면 제품의 다양화가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 라면 업계 관계자는 “봉지라면에서 용기면으로 패러다임의 변화됨에 따라 앞으로 다양한 신제품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며 “전자레인지용 컵라면 등 용기면 시장의 변화를 줄 다양한 제품이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마무리하려니 김훈의 『라면을 끓이고』가 떠오르는데, 이 책에는 김훈 작가만의 라면 조리법이 담겨있다.

라면 포장지에는 끓는 물에 면과 분말수프를 넣고 나서 4분 30초 정도 더 끓이라고 적혀있지만, 나는 센 불로 3분 이내에 끓여낸다. 또 물은 550ml 3컵 정도를 끓이라고 포장지에 적혀 있지만 나는 700ml 정도를 넣고 끓인다. 물이 넉넉해야 라면이 편안하게 끓는다. 라면을 끓일 때, 가장 주요한 점은 국물과 면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국물의 맛은 면에 스며들어야 하고, 면의 밀가루 맛은 국물 속으로 배어 나오지 않아야 한다. 센 불을 쓰면, 대체로 실패하지 않는다. 식성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나는 분말수프를 3분의 2만 넣는다.

나는 라면을 조리할 때 대파를 기본으로 삼고, 분말 수프를 보조로 삼는다. 대파는 검지 손가락만한 것 10개 정도를 하얀 밑동만을 잘라서 세로로 길게 쪼개놓았다가 라면이 2분쯤 끓었을 때 넣는다. 파를 넣는 다음에는 긴 나무젓가락으로 라면을 한 번 휘젓고 빨리 뚜껑을 덮어서 1분~1분 30초쯤 더 끓인다. 그 다음에는 달걀을 넣는다. 달걀을 미리 깨서 흰자와 노른자를 섞어 넣어야 한다. 끓을 때 달걀을 넣으면 달걀이 굳어져서 국물과 섞이지 않고 겉돈다. 달걀을 넣은 다음에 젓가락으로 저으면 달걀이 반쯤 익은 상태에서 국물 속으로 스민다. 이 동작을 신속히 끝내고 빨리 뚜껑을 닫아서 30초쯤 기다렸다가 먹는다. (29~30쪽)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한 라면이 최근 수출액 최고치를 경신했고, 컵라면의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는 라면, 오늘 밤, 김훈의 레시피 대로 힘들었던 과거부터 지금까지 줄곧 함께해온 ‘국민 간식’ 라면을 끓여 먹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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