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
미투운동,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2.27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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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체 영역에서 피해자 속출
면밀한 조사와 마땅한 처벌 시행돼야
<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최근 잇따른 성범죄 피해자들의 고백을 들은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이 정도로 썩었었나?” “안 썩은 데가 없네”라며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일각에서는 “성범죄 가해자들이 너무 많아서 모두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성범죄자들이 너무 많이 나오니 가해자들의 죄가 옅어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이 나오면 가해자들만 좋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미 쏟아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듯이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범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성범죄 가해자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마땅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 미투운동의 시작

세계적인 미투운동은 지난해 10월 미국의 여배우 애슐리 저드(Ashely Judd)가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 추문을 폭로하면서부터 시작됐고 우리나라 미투 운동은 지난 1월 29일 JTBC 뉴스룸에서 통영지청의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 혐의를 주장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앵커 손석희의 진행으로 이뤄진 인터뷰에서 서지현 검사는 검찰 전직 고위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법무부로부터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말했다. 서지현 검사는 2010년 어느 장례식장에서 당시 법무부에서 근무하던 안 모 검사가 옆자리에 앉아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를 상당기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느낀 기분에 대해 “결코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내가 환각을 느끼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장례식장에는 법무부장관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말리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안태근 검사는 피의자 신분으로 26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 받았다.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전해졌다.

# 문화예술계 ‘미투 폭로’의 시작

미투 운동은 유독 문화예술계와 연관돼 있었다.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의 시작은 최영미 시인이었다. 지난 6일, 최 시인 역시 JTBC 뉴스룸을 통해 고은 시인의 성범죄를 주장했다.

최 시인은 먼저 그가 2016년에 발표한 시 「괴물」의 당사자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시에 쓰인 성폭력의 피해자가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시에는 En시인이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고,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른다는 표현이 있다. 그는 시에 나오는 성폭력의 피의자인 En시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으나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원로 시인’이라는 점에서 많은 네티즌들은 En 시인이 고은임을 추측해낼 수 있었다.

# 끊이지 않는 피해자 폭로

고은 시인을 필두로 문화예술계의 성범죄 의혹 가해자들은 계속해서 폭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윤택, 이명행, 오태석, 하용부, 조근현, 변희석, 윤호진, 한명구, 조재현, 조민기, 조증윤, 선우재덕이 현재까지의 주인공들이며 앞으로도 얼마나 더 나올지 관심이 집중된다.

배우 이명행은 연극계에 종사하는 한 스태프가 SNS를 통해 과거 이명행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사실을 인정하고 페이스북에 사과글을 올린 후 출연 중이던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하차했다.

연출가 이윤택은 SNS를 통해 불거진 그의 성범죄 의혹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 사과했다. SNS에 따르면 그는 그가 연출을 맡은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을 18년간 성폭력 해왔다. 그러나 그는 “성추행은 인정하고 사과하나 성폭행은 인정할 수 없다”며 “성관계는 있었으나 폭력적인 방법으로 강제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피해자들에게 과거 이윤택으로부터 피해를 당할 당시를 입증할 만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이윤택을 구속하여 수사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연출가 오태석 역시 연극인들이 SNS에 올린 글로 성추행 논란에 휘말렸다. 1998년 극단 목화에 있었다고 밝힌 한 여성은 오 씨가 수십명의 단원들 앞에서 여자 선배들을 성추행했다고 주장했다. 오 씨는 이에 대해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제 제68호 밀양백중놀이 기능 보유자이자 연출가 하용부는 2001년 밀양연극촌에서 신입단원을 성폭행한 의혹과 2004년 연희단거리패 단원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씨는 “워낙 오래전 일이어서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지만 어떤 변명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모두 내 잘못”이라며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영화 <흥부>의 조근현 감독 역시 성추문에 휩싸였다. 지난 8일 한 배우 지망생이 자신의 SNS에 조근현 감독으로부터 “깨끗한 척 조연으로 남느냐, 자빠뜨리고 주연하느냐, 어떤 게 더 나을 것 같아?” 등의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24일 디시인사이드 연극-뮤지컬 갤러리에서는 20대 여자 배우 지망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2016년 ㅈㄱㅎ 감독과 미팅을 했고 영화사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감독 작업실로 오라는 메시지가 왔다. 미팅 시간은 오후 1시라 ‘대낮에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라고 별 걱정 없이 그 오피스텔에 갔다”로 글을 시작해 조 감독이 “누구는 내게 이렇게까지 해서 작품을 줬다. 너도 할 수 있겠느냐” 등의 말을 했다고 적었다. 이 외에도 현재 조근현 감독에 대한 폭로는 이어지고 있다.

뮤지컬계 음악감독인 변희석 역시 디시인사이드 연극-뮤지컬 갤러리에 올라온 글 때문에 그가 이끈 뮤지컬 오케스트라 팀 단원에게 “생리를 하면 예민해진다. 그러니 너는 생리하지 말라” 등과 같은 수치심을 느끼는 발언과 반복되는 험담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후 변희석은 그의 과오를 사과하는 글을 올려 “다른 동료들이 존중하고 존경하는 동료 배우에 대해 함부로 성적인 농담을 하여 듣는 모든 이들에게 극도의 불쾌감을 줬다”며 자신의 잘못을 하나하나 짚으며 인정했다.

이 외에도 연출가 윤호진, 배우 조재현, 배우 최일화, 배우 겸 교수 한명구 등은 붉어진 성추문에 대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고, 배우 조민기와 선우재덕은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조증윤은 미투 운동에서 지목된 가해자들 중 처음으로 경찰에 체포당했다.

한편, 문화예술계를 제외하고도 현재 국내 대형 증권사 지점장, 대한보디빌딩협회 이연용 회장 등이 추가로 성추문에 휘말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미투 운동에 대해 “적극지지한다”며 “사회 곳곳에 뿌리 박힌 젠더 폭력을 발본색원한다는 생각으로 유관 부처가 범정부 차원의 수단을 총동원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에 오늘(27일) 여성가족부와 기획재정부, 교육부, 행정안전부, 인사혁신처 등 관계부처들은 합동으로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 보완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성범죄 피해 고백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성범죄가 흔해 보일 수 있고 그만큼 죄가 가볍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나라는 과거 친일파들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기에 아직도 친일의 잔재들이 남아있다. 남에게 상처를 준 것으로 친다면 친일파나 성범죄자나 그 죄의 중함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잠재적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성범죄 의혹이 있는 가해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고 제대로 조사해 성범죄라는 적폐를 뿌리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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