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은 페미다… 페미니스트가 나쁜가요?
아이린은 페미다… 페미니스트가 나쁜가요?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3.20 14:4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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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걸 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이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매체와 네티즌의 질타를 받았다. 앞서 걸 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진에 적힌 문구 때문에 아이린과 비슷한 비난을 들어야 했다.

문제는 일부 매체와 네티즌들이 ‘누군가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 자체에 반감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를 알지 못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매체 및 네티즌들과 일부 남성들의 여성혐오가 합쳐져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지난 18일 아이린은 서울 삼성동 코엑스아티움에서 진행된 ‘레벨업 프로젝트 시즌2’ 1,000만뷰 돌파 기념 팬미팅에서 “최근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팬의 질문에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대답했다.

이에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도서가 “페미니스트 도서”라며 “아이린도 페미니스트가 아니냐”며 반감을 드러냈다. 일부 팬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이린의 사진을 자르거나 굿즈를 망가뜨리는 등 과격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 온라인 매체들 또한 ‘페미니스트’가 문제라는 듯한 기사를 실었다. 한 매체는 “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이 ‘페미니스트’로 오해받고 있다”를 첫문장으로 적었다. 또 다른 매체는 “일각에서는 아이린이 해당 도서를 읽었다는 것만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단정 짓고 지나친 비난을 퍼붓는 것은 과한 처사라는 의견도 있었다”와 같은 문장을 쓰는 등 마치 ‘페미니스트’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병폐라는 식의 기사를 쏟아냈다.

지난 13일 에이핑크의 손나은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날 손나은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아침 부은 얼굴 ‘GIRLS CAN DO ANYTHING(소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동일한 문구가 적힌 휴대폰 케이스를 들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해당 문구는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상징적인 것으로 한때 많은 여성들이 해당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어 화제가 됐다. 일부 네티즌들은 “그놈의 ‘페미(페미니스트)’ 좀”, “손나은 페미인가요? 아 오늘부터 차단”, “손나은 남자팬 떨어지겠네” 등을 댓글로 달았으며, 일부 매체들의 반응도 아이린 때와 다르지 않았다.
 

페미니즘 = 나쁘다?

19일과 20일 포털 사이트에는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페미니즘’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라는 단어 의미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무엇을 비판하는지도 모른 채 “이제는 지겹다. 너무 많이 ‘페미, 페미’ 한다.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페미니즘은 극단적이고 무조건 나쁘다”는 식이다.

백과사전에서 ‘페미니즘’을 찾으면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살펴보고, 여성이 사회 제도 및 관념에 의해 억압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여러 가지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포괄하는 용어”라는 뜻이 나온다. 즉 ‘페미니즘’은 여성이 당하는 억압을 해소하려는 행위의 일체이고,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을 행하는 사람이다.

여성 독자가 주를 이루는 페미니즘 서적 역시 여성에 대한 억압을 다룬다. 이번에 문제가 된 『82년생 김지영』이 대표적이다. 이 소설은 태어날 때부터 여성이라는 이유로 온갖 억압과 차별을 당해 정신병이 걸린 김지영씨의 이야기를 다뤘다. 수많은 여성들과 일부 남성들은 이 책에 공감했고 긴 기간 동안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켰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우리나라의 수많은 여성들이 당했던 차별과 억압이다.

“1990년대까지도 한국은 출생 성비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나라였다. 김지영 씨가 태어났던 1982년에는 여아 100명당 106.8명의 남아가 태어났는데, 남아의 비율이 점차 높아져 1990년에는 116.5명이 됐다. 자연적인 출생 성비는 103명에서 107명이다. 정부에서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칠 때였다. 의학적 이유의 임신중절수술이 합법화된 게 이미 10년 전이었고, ‘딸’이라는 게 의학적인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성 감별과 여아 낙태가 공공연했다. 1990년대 초, 셋째아 이상 출생 성비는 남아가 여아의 두 배를 넘었다.”

“김지영 씨가 회사를 그만둔 2014년,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9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출산한 여성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비율은 2003년에 20퍼센트를, 2009년에야 절반을 넘었고, 여전히 열 명 중 네 명은 육아휴직 없이 일하고 있다. 물론 그 이전, 결혼과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이미 직장을 그만두어 육아휴직 통계 표본에도 들어가지 못한 여성들도 많다. 또 2006년에 10.22퍼센트이던 여성 관리자의 비율은 꾸준히 그러나 근소하게 증가해 2014년에 18.37퍼센트가 되었다. 아직 열 명 중 두 명도 되지 않는다.”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 + 여성혐오

일각에서는 일부 대중이 페미니즘을 헐뜯는 데에는 페미니즘 자체의 의미를 모르는 것에 더해 전통적인 여성혐오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심리학자이자 우송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인 한민은 그의 책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에서 여성혐오를 “양성평등 사회로 변해감에 따른 남성들의 저항”으로 규정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남자가 밖에서 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하는 게 당연시 되던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IMF 사태가 터지고 더 이상 남자들의 노동만으로는 가정의 경제를 유지할 수 없는 시대가 열렸다. 이제 제한된 일자리를 여성들이 남성들과 공유하게 된 것이다. 이에 더해 시대적으로 남아선호가 사라지고 출산율이 줄면서 고학력 여성들이 ‘남성들의 영역’에 진출하는 것이 본격화 됐다. 여기에서 남성들의 혼란이 나타난다. 남성들은 ‘왜 이렇게 여자들이 설치고 다니지? 여자들은 집에서 애 보고 밥 하는 거 아니었어?’하며 불안해한다.

그는 “사람들은 본래 익숙한 것을 추구하는 존재”라며 “낯선 것을 보면 두려워하고 공격하려 한다”라고 여성혐오의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가 서구에 비해 가부장 시대의 전통적 성 역할이 많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유럽의 양성평등은 권리를 찾기 위한 수많은 여성들의 희생이 있은 다음에야 가능했던 것”이라며 “서구가 200년 이상에 걸쳐 이뤄낸 사회경제적 변화를 불과 50~60년에 따라잡은 한국이지만 문화적 인식이 변화하는 속도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같은 인간으로서 여성과 남성은 평등해야 한다. 이 주장은 부정할 수 없어야 한다. 최근 들끓고 있는 미투운동이나 페미니즘 문제, 여성혐오 현상도 우리 사회가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마찰음일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비판하기 전에 여성이 어떤 억압을 당하고 있고, 자신은 왜 페미니즘에 불편함을 느끼는지를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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