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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별세… “파란만장한 삶이 막을 내렸다”

기사승인 2018.04.17  1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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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파란만장한 삶이 막을 내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겸 감독 최은희가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고인의 장남인 신정균 영화감독에 따르면 최은희는 16일 오후 4시 30분쯤 지병으로 별세했다. 신 감독은 “어머니가 오늘 오후 서울 가양동 한 내과에 신장 투석을 받으러 가셨다가 임종하셨다”고 말했다.

최은희는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청춘극장’으로 연극 무대에 데뷔한 뒤 1947년에는 ‘새로운 맹세’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는 ‘마음의 고향’, ‘밤의 태양’에 출연하며 영화계의 신예로 떠오른다.

그의 삶은 남편인 심상옥 감독을 빼놓으면 얘기할 수 없다. 그와 심 감독은 6·25전쟁 피난지에서 그가 연극 ‘야화’와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만나게 돼 ‘꿈’, ‘성춘향’, ‘동심초’, ‘벙어리 삼룡’, ‘이 생명 다하도록’, ‘빨간 마후라’ 등 100여편의 작품을 함께 작업했다. 그는 ‘어느 여대생의 고백’으로 제1회 국산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상록수’와 ‘청일전쟁 여걸 민비’로 대종상 여우주연상과 아세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감독으로도 활약했다. 1965년에는 우리나라 세 번째 여성 감독으로서 ‘민며느리’, ‘공주님의 짝사랑’, ‘총각선생’을 연출했고, 배우로도 출연했던 ‘민며느리’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67년에는 안양영화예술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해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978년 신 감독과 이혼하고 학교 문제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다. 운명의 장난인지 전 남편인 신 감독 역시 같은 해 납북됐고, 북한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신뢰를 얻어 ‘약속’ 등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이때 신 감독과 함께 만든 ‘돌아오지 않는 밀사’로 체코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에서 특별감독상을, ‘소금’으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86년에는 신 감독과 함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미국 대사관으로 극적으로 탈출한 후 10년 넘게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에 귀국했다. 신 감독은 2006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한편, 그의 삶은 2007년에 출간된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김승일 기자 present33@readersnews.com

<저작권자 © 독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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