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상 선임기자를 만났다. 그간 김훈 중위 의문사 진상, 다단계 업체 제이유 사건과 조희팔 사건, 친일파 후손 재산 상속 등을 특종 보도해온 그였기에 책 『빨간 베레모』에 대해 묻기 전, 탐사 보도에 관한 견해를 먼저 물었다. 그는 탐사 보도를 "거악 세력이 감추려고 하는 진실을 파헤쳐 그 문제를 이슈화, 공론화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며 "큰 특종 뒤에는 큰 소송이">
[인터뷰] 정희상 시사인 기자 "거악 세력이 은폐한 진실을 공론화하다"
[인터뷰] 정희상 시사인 기자 "거악 세력이 은폐한 진실을 공론화하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05.20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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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 서승 『옥중 19년』, 서중석 『조봉암과 1950년대』, 안원구·구영식 『나의 MB 재산 답사기』
<사진=이태구 기자>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소명의식, 뒷심, 맷집은 탐사 보도 전문 기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30여년간 탐사 보도를 통해 사회악을 폭로해 온 <시사인> 정희상 선임기자를 만났다. 그간 김훈 중위 의문사 진상, 다단계 업체 제이유 사건과 조희팔 사건, 친일파 후손 재산 상속 등을 특종 보도해온 그였기에 책 『빨간 베레모』에 대해 묻기 전, 탐사 보도에 관한 견해를 먼저 물었다. 

그는 탐사 보도를 "거악 세력이 감추려고 하는 진실을 파헤쳐 그 문제를 이슈화, 공론화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며 "큰 특종 뒤에는 큰 소송이 따른다. 결국, 승리하지만 그 과정이 참으로 피곤하다"고 고충도 털어놨다. 『빨간 베레모』의 공동 저자로 참여한 최빛 작가는 "김훈 작가가 기자 시절 그를 '제일 애정이 가는 후배'라며 아꼈다"며 "현재는 주진우 기자의 사수다"라고 귀띔했다. 

그는 과거 국가가 벌인 참극을 고발하기 위해 책『빨간 베레모』를 지난 3월 출간했다. 책에는 6·25 전쟁 직후인 1949년 국군이 자행한 경상북도 문경 석달마을 민간인 학살에서 살아남아 평생을 진상 규명에 몸 바친 채의진 선생의 일대기가 담겼다. 

- 무거운 내용이라 딱딱할 줄 알았는데 소설처럼 쉽게 읽혔다. 

우리는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상상하지 못할 일을 두고 '영화 같은', '소설 같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천인공노할 만행이자 비극이었지만 문경 석달마을 민간인 학살 참사와 그 안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와 70여년을 헤쳐나온 채의진 선생의 삶은 한 편의 소설이고 영화다. 팩트를 중시하는 기자 처지에서는 딱딱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정리하는 게 습관이 됐기에, 이번에는 맥락을 살리면서 박진감 넘치면서도 호소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을 사용하는 후배 작가들과 손을 잡았다. 최빛 작가와 강지원 작가다. 그들의 연대와 도움이 책의 흡인력을 살려낼 수 있었던 비결이었던 것 같다. 

- 정부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충분한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고 생각하는지. 

아직 국가적으로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숙제다. 사건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도록 민간인학살 문제의 해결이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가해자나 가해자를 대표하는 세력이 지난 70년간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면서 진실의 역사를 가위질해버렸기 때문이다. 누구든 우리 국군, 경찰도 비무장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다는 진실을 말하면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그래서 피해자 세대는 오랜 세월 침묵의 실어증에 빠졌고, 연좌제를 의식해서 자손들에게마저 진상을 숨겼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런 엄중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인권을 말하는 세력과 지식인층이 50년 이상 이 가공할 민간인 학살 참사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지킬박사와 하이드같은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문제가 학계와 인권 시민단체 사이에 해묵은 인권 숙제로 떠오른 게 2000년대 들어서였다. 그래서 대비도 부족했고, 해야 할 과제가 아직도 넘쳐난다. 

- 어떤 과제가 남았다고 보시는지. 

2000년대 들어 민간인 학살 사건 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특별법이 만들어져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에서 조사를 했지만 제한된 조사 권한과 시간 때문에 1만건 가까이 접수를 받았지만 다 조사하지 못했다. 진화위는 법적 시한을 다해 현재 문을 닫은 상황이다. 그래서 그동안 발굴된 집단 학살 사건 피해자들의 유해는 감식을 진행했던 서울대학교와 충북대학교 등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 이것을 매장지를 마련해 봉안하고 추모공원 등도 조성해야 한다. 또 국가가 비무장 민간인을 전시도 아닌 평시 상황에서 무차별 학살하고 탄압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등의 숙제가 남아있다. 또 진화위법을 개정하는데, 조사 기간 연장, 조사 권한 강화, 억울한 피해에 대한 배·보상 문제를 포함한 트라우마 치유 작업 등이 법안에 포함돼야 한다. 현재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이게 신속하게 통과되기를 원한다. 

- 수많은 사건 중에 석달 마을 학살에 특히 더 관심이 간 이유는.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전쟁범죄, 또는 반인륜범죄는 그 당시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문경 석달마을 사건을 꼽은 데는 이유가 있다. 야만적 학살을 자행한 부대와 사후수습을 했던 정부가 무슨 말로도 학살의 명분을 댈 수 없는 상징이 바로 문경 석달마을 사건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그것도 군경이 작전에 협력했던 마을 주민인데도 아무런 조사나 확인 절차도 없이 남녀노소 86명의 목숨을 그야말로 파리 사냥하듯 앗아갔다. 군 최고 책임자인 국방부 장관이 현장을 다녀가서 주민을 위로하는 시늉을 한 뒤 공비가 학살한 것으로 뒤집어 호적정리를 했다. 이쯤 되면 당시 정부는 총체적으로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그걸 바로잡아야 했다. 

<사진=이태구 기자>

- 채의진 선생과 약속했던 자서전(평전)이 출간됐다. 소회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방부는 법원이 판결한 피해 유족에 대한 피해 배상금의 상당액을 환수하려고 채의진 선생 등 가족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그 와중에 채의진 선생은 화병을 얻었다. 그래서 문경학살사건을 둘러싼 정부, 특히 국방부의 비인도적이고 야만적인 대응 태도는 사건 당시나 지금이나 별 다름없다고 느껴졌다. 애석하지만 그렇게 가신 채 선생 앞에 나는 평전을 써서 영전에 바치겠다고 고했고, 늦게나마 약속을 지켰다. 이 평전이 전국 민간인학살 문제 해결을 위해 최근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진화위 특별법 개정 운동에 작은 불씨가 되기를 기대한다.

- 유족 간 갈등이 언급됐지만, 자세히 다뤄지지 않았다. 왜 하나 되지 못했나.

채 선생이 문경 사건 대표를 넘어서 전국유족대표로 활동하면서 유족 내 일부 인사와 불협화음이 있었다. 그 과정을 나도 곁에서 안타깝게 지켜보았는데 한마디로 공과 사를 둘러싼 뿌리 깊은 갈등이었다. 채 선생이 공적 대의명분을 중심으로 위령 시설 건립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학살 현장 땅 주인이던 한 유족이 사적 권리(토지소유권)를 무기로 사사건건 방해하고 별도 위령제 등으로 어깃장을 놓으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땅 주인은 유사한 민간인 학살 사건 중 문경 사건이 최우선으로 처리돼야 한다고 고집해 채 선생과 갈등이 있었다. 채 선생이 문경 석달마을 사건 외에 채 선생이 눈을 감을 때까지 끝내 화해에 이르지 못했는데 평전에서 그 내막을 자세히 다루지 않은 것은 어차피 민간인학살 문제해결의 대의는 잘못을 저지르고 책임지지 않는 국가폭력을 상대로 한 것이지 투쟁 과정의 유족 내 갈등을 중심에 놓을 주제는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채 선생의 생전 아픔이었기에 고인과 유족에 대한 예우 등 배려심도 작용했다. 

- 채의진 선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사건 해결에 어려움은 없는지.

채의진 선생이 없는 문경 석달마을 사건 피해 유족이 기댈 곳은 이제 전국적인 민간인학살 문제를 해결할 통합 특별법 개정 운동 밖에 없어 보인다. 그나마 채의진 선생이 기초를 닦아놓으셨고, 진화위에서 사건 전체적 진상은 규명되었기에 법이 개정된다면 문경 석달마을 사건 해결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본다.  

- 책을 출간하면서 기대했던 바가 있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4·3사건 70주년을 맞아 법 개정을 통한 미완의 숙제 해결을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육지의 민간인 학살 등 과거사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 선거공약이었다. 평전을 낸 시점도 절묘하게 그 시기와 겹쳤다. 여야 간 합의를 통한 법 개정이라는 길이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작으나마 우호적 여론에 불씨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 한국 전쟁 직후 민간인 학살 사건,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 등 국가가 축소 은폐하려 했던 사건을 특종보도 했다. 그런 사건에 관심을 둔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28년 전 언론인 직업을 택하면서 나름의 소명의식을 가다듬고 끝까지 지키려고 한 것이 있다. 바로 강한 자 힘 있는 자의 부조리 앞에 신음하는 우리 사회의 오랜 병페 구조 속에서 약자의 편에서 진실을 알리고 그런 부조리를 드러내 개선해 공동체가 더욱 선한 방향으로 진화하는 데 일조하는 기자가 되겠다는 소명이다. 힘들기도 했고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비교적 그 길을 벗어나지 않고 쭉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 추가로 출간을 준비 중인 책이 있는지. 

12년 전인 2005년 당시까지 탐사 보도해온 굵직한 주제를 모아 취재 뒷이야기로 『대한민국의 함정』이라는 단행본을 낸 적이 있다. 그 이후로도 여러 가지 굵직한 이슈들을 추적해 공론화했는데 대표적인 탐사 보도 이슈들을 다시 모아서 30년 가까운 기자 생활을 결산하는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 추천 도서와 이유를 부탁드린다. 

『옥중 19년』(서승 저, 진실의힘)

'재일 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억울하게 19년간 0.75평 독방에서 복역했던 서승 교수의 기록이다. 동생 서준식과 함께 기소된 그는 고문을 견디다 못해 조사실에 있던 난로를 끌어안고 분신을 시도해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책 속에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있다. 한국 인권사에 기록될 소중한 자료다. 

『조봉암과 1950년대』(서중석 저, 역사비평사)

잘못된 한국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어떤 토대 위에서 가능했는가를 사회·역사적 분야에서 잘 설명해준 책이다. 1950년대 야당 당수였던 조봉암도 빨갱이로 몰려 사형을 당했다. 그랬던 야만의 시절에 (국가가) 일반 민중에게는 어떻게 했겠는가. 일반 민중이 반 인권적 국가폭력에 노출됐던 실상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 여러 갈등과 야만적인 모습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MB 재산 답사기』(안원구·구영식 저, 비아북)

사랑하는 후배 구영식 기자가 최근 MB 재산 비리와 관련된 책을 출간했다. 대담한 인터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MB 재산과 그에 얽힌 비리에 대해 낱낱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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