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유지?… '내 행복이 제일 중요해' vs ‘아이는 무슨 죄’
낙태죄 폐지? 유지?… '내 행복이 제일 중요해' vs ‘아이는 무슨 죄’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05.24 16: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헌법재판소가 낙태한 임산부와 의사를 처벌하는 ‘낙태죄’ 조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공개변론을 24일 개최하면서 ‘낙태(임신중절수술)’의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다.

이번 공개변론은 2013년 낙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지난해 2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데서 비롯됐다. A씨는 “생존과 성장을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태아는 생명권 주체가 될 수 없다”며 관련 형법이 위헌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위헌 쟁점이 된 조항은 형법 269조 1항(자기 낙태죄)과 270조 1항(동의 낙태죄)이다. 형법 269조 1항은 ‘부녀가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70조 1항은 ‘의사‧한의사‧조산사 등이 부녀의 촉탁을 받아 낙태한 때에는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낙태죄 폐지의 위헌 심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12년 8월 열린 헌법소원 심판에서 한차례 합헌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당시 재판관 8명의 의견은 4대 4로 극명하게 갈렸고, 결국 위헌 정족수인 6명을 채우지 못해 합헌으로 결정이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결과가 전망된다.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섰던 지난번과 달리 이진성 헌재소장을 비롯해 6명의 재판관이 낙태죄에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여성 단체‧여성가족부 vs 법무부‧종교계

일부 여성단체와 여성가족부는 ‘낙태 찬성’ 의견을 밝혔다.

지난 20일 홍익대학교 걷고 싶은 거리에서는 비웨이브(BWAVE·임신중단 합법화를 위한 모임) 주최로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1000여명의 여성이 참여했고 그들의 손에는 ‘나의 몸, 나의 인생, 나의 선택’이라는 피켓이 들려 있었다. 한 참가자는 “한 인간의 인생설계를 국가가 간섭하고 여성만 처벌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기관으로는 여성가족부가 처음으로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공식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이건정 여가부 여성정책국장은 22일 “현행 형법이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낙태 시술이 불법적‧음성적으로 시행되고 있어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 임신‧출산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재생산권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며 "헌법에 위배되는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법무부와 종교계는 ‘낙태 반대’ 의견을 밝혔다.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는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낙태죄 폐지 논란을 ‘생명권 vs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 전제하고, (낙태를 하는) 여성을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을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간주했다. 그러면서 “태아의 생명보호는 매우 중요한 공익이고, 낙태의 급격한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구인회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 등 대학교수 96명은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지난 8일 헌재에 제출했다. 구인회 교수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아기는 사랑하는 사람과 육체적인 관계에서 생긴다. 자기가 원해서 한 행동이면 책임을 지는 게 원칙”이라며 “여성이 자신의 몸을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맞지만 태아는 어머니와 독립적인 개체이므로 함부로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낳아 엄마와 아이가 불행할 것이란 질문에는 “불행할 거라고 예단해서는 안 된다”며 “태어날 때부터 불행한 삶을 살 것이라 예정된 사람은 없다”고 강조했다.

원치 않는 아이, 정말 불행할까?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대통령령이 정하는 유전적 장애 ▲전염성 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 ▲혈족·인척간 임신 ▲모체 건강을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을 때 낙태를 허락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이런 낙태는 1만829건으로 전체 낙태의 6.4%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경우가 사회‧경제적인 사유에 의한 낙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은 필연적으로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까?

미국의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는 원치 않는 아이가 성공한 인물로 자란 대표적인 사례다. 윈프리는 사생아로 태어나 9살 때 강간, 14살 때 출산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재 유명 방송인이자 자선사업가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전해주고 있다. 윈프리의 어머니가 어려운 형편을 이유로 윈프리를 낙태했더라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 방송인, 선행의 여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 낙태 찬성 측에서는 불우한 환경에서 윈프리 같은 사례도 존재하지만, 확률상으로는 잘못된 길로 빠질 확률이 더 높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2013년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교도소 수감자 중 성폭력 사범 64%, 살인범 60%가 성장 과정에서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출산만이 답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출산과 양육을 국가가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신이 두렵지 않은 사회 만들어야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난임센터장도 18일 고려대학교 의대에서 열린 한국의료윤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출산과 양육을 하기보다 임신하지 않거나 낙태하는 게 더 유리한 사회”라면서 “출산하고, 양육하는 게 개인과 가정에 더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미혼부의 양육 책임을 법제화할 것을 주문하며 “남성이 부양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낙태 허용 범위를 넓히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높이는 게 아니라 위험으로 내모는 것”이라며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사기”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낙태율이 낮은 선진국에서는 미혼부가 양육책임을 회피할 경우 월급과 재산을 압류하거나 운전면허와 여권을 정지, 벌금 부과에 구속까지 한다”면서 “미혼부가 경제 능력이 없으면 국가가 미혼모에게 선지급하고 이후 미혼부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낙태보다 출산을 선택하는 것이 개인이나 가정에 더 득이 되도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를 지닌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출산과 양육을 행복보다는 희생과 수고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비쳐지고 있다. 출산‧양육에 대한 개인의 인식 전환과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절실하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