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탕트의 위기’ 속 ‘화해’ 말한 필립로스 타계… 그의 소설들
‘데탕트의 위기’ 속 ‘화해’ 말한 필립로스 타계… 그의 소설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5.2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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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소설가 필립 로스가 지난 22일(현지시간) 타계했다. 향년 85세다. <뉴욕타임즈>는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전기 작가 유디트 서먼이 “로스의 사망원인은 주로 심장의 기능이 감소돼 나타나는 울혈심부전증(Congestive heart failure)”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그의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20세기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소설가다. 비록 노벨문학상과 연은 없었지만, 전미 도서상을 두 번,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두 번, 펜포크너상을 세 번, 퓰리처상, 맨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을 각각 한 번씩 수상했다.

그는 폴란드의 유대계 이민 2세다. 체코의 유대계 작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소설가 이반 클리마, 폴란드의 유대계 작가 부르노 슐츠 등 동유럽의 일부 소설가들은 그를 ‘우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 문학 출판사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는 좀처럼 살아있는 작가의 작품을 출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로스가 살아있을 때 9권짜리 완전 결정판을 낼 정도였다. 이러한 작가는 지금까지 로스를 포함해 3명뿐이다.

로스는 많은 작품을 내는 정력적인 소설가였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소설을 냈고, 73세부터는 일 년에 한 권씩 새로운 소설을 썼다. 그의 작품은 변화무쌍했고 사회를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가 담겨있다. 로스는 과거 “존 업다이크(소설가)나 솔 벨로(소설가)는 세상을 향해 손전등을 비추며 세상을 객관적으로 들추지만, 나는 구멍을 파고 그 구멍에 손전등을 비춘다”라고 말했다.

두 가지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고뇌’가 그의 첫 번째 소설의 소재였다. 1959년에 발표돼 1960년 스물여섯살이던 로스에게 전미도서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인 『굿바이, 콜럼버스』는 전후 시대를 살아가는 유대계 미국인들의 고뇌를 담았다. 소설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계층이 생긴다. 부유한 유대인들은 약자인 흑인들을 노예로 부렸지만, 부유하지 않은 유대인들은 흑인들과 같은 비주류의 인생을 살면서 흑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또한 가족 안에서도 유대인들은 자유로운 미국 사회와 엄격한 유대인의 전통 사이에서 갈등한다.

『포트노이의 불평』(1969)에서도 이 같은 ‘고뇌’가 잘 나타난다. 주인공인 십대 소년 포트노이는 부모로 상징되는 엄격한 도덕 윤리와 성적 욕망 사이에서 고뇌한다. 포트노이는 포수 미트를 이용해 자위하는 등 자위행위에 병적으로 몰입하고 그럴 때마다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 성인이 돼서도 기형적인 성적 욕망에 사로잡혀 결국 정상적인 성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 당시 이 소설은 보수적인 기독교 윤리가 지배하던 미국에서 미국의 도서관들이 금서로 지정할 정도로 큰 충격을 던져줬다. 확실히 노골적인 성적 표현, 상세한 자위행위 묘사 등이 담겨있지만, 당시 미국 사회가 성적으로 개방적이게 변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는 평을 듣는다.

『미국의 목가』(1997)로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그의 작품에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았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에서는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인 ‘매카시즘’을 비판한다. 책에는 “트루먼씨가 국민에게 이 나라를 공산주의가 큰 문제라고 말하면, 국민들은 이 잘나빠진 나라 때문에 정말 화가 나. (중략) 십만명밖에 안 되는 공산주의자가 문제라고. 그들이 인구가 1억5000만인 이 나라를 전복시킬 거라고. 내가 바보인줄 아오? 이 빌어먹을 나라가 무엇 때문에 망해가고 있는지 얘기해볼까?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노동자에 대한 차별 때문이오. 우리나라를 망치는 것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오. 우리나라는 인간을 짐승처럼 취급하는 차별 때문에 저절로 망해가는 거야!”라는 내용이 나온다. 한편, ‘매카시즘’은 미국이 소련 및 중국과 화해분위기인 ‘데탕트(프랑스어로 완화·휴식)’를 조성하며 누그러졌다.

‘삶과 죽음’ 또한 그가 주로 이야기 하는 소재였다. 『에브리맨』(2006)에서는 한 노인의 삶을 통해 나이듦과 상실, 죽음에 대해 이야기 했고 『울분』(2008)에서는 젊은 청년의 삶을 통해 삶과 죽음을 이야기 한다. 특히 『울분』에서는 법률가가 돼 윤택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마커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전쟁에 끌려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을 한 편의 블랙 코미디로 그려냈다.

2012년 돌연 절필 선언을 한 로스의 마지막 작품은 『네메시스』(2010)였다. 그는 “저는 다 끝냈습니다. 『네메시스』가 제 마지막 작품이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답게 이 소설에는 그가 지금까지 다뤄왔던 모든 소재가 총체적으로 녹아있다. ‘네메시스’의 의미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 불운, 어떤 이를 골라 희생자로 만드는 극복할 수 없는 힘’으로 소설에서는 급성 바이러스 전염병인 ‘폴리오’로 형상화된다. ‘폴리오’에 감염된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전염병 보균자라고 추측되는 사람들을 색출하고 증오하게 된다. 전염병으로 인해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삶과 죽음’, ‘고뇌’, ‘비판 의식’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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