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증세’는 필수, 세율은 선택?… 아모르 증세
‘부자 증세’는 필수, 세율은 선택?… 아모르 증세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8.07.0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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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고소득자 위주로 세금을 더 거두자는 문재인 정부의 ‘부자 증세’, ‘핀셋 증세’를 놓고 말이 많다. 민주당은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한국당은 “특정 계층에 대한 징벌적 과세”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증세’, 그것도 ‘부자 증세’는 한국 정치·경제사를 봤을 때 어쩔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3일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등의 종합부동산세 개편안과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 금액 인하안 등 소득이 높은 사람 위주로 세금을 더 걷는 이른바 ‘부자 증세’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일단 증세만 놓고 봤을 때, 국민 복지를 증대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수라는 점에 많은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GDP 대비 복지 지출은 대략 10%로, OECD 회원국의 평균 비율(21%)에 비교해 절반도 안 된다. GDP 대비 세율은 2014년 기준 대략 24%로, OECD 회원국 평균 GDP 대비 세율 34%에 비해서도 10%포인트가량 낮다. 대다수 노인이 ‘절대적 빈곤(생활의 기본적 필수품을 획득할 수 없어 최저의 생활 수준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에 처해있으며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금근로자의 45%인 888만명이 20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 등 ‘증세 없는 복지’라는 공약을 내세워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정부조차도 법인세 최저세율 상향 조정, 금융 분야 등에서 비과세 감면 축소,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거래세 도입, 증권거래세 적용 대상 확대 등 각종 증세 정책을 시행에 옮겼다. 이쯤 되면 복지를 위한 증세는 필수다.

문재인 정부가 ‘보편적 증세(국민 모두에게 전반적으로 세금을 더 걷는 것)’보다 ‘선별적 증세(특정인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것)’를, 특히 그중에서도 ‘부자 증세’를 택한 것은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세금 정책 실패사를 돌이켜보면 당연한 흐름이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 모두의 세금을 전반적으로 늘리자는 ‘보편적 증세’를 추구해 반발에 부딪혔다. 2006년 1월 신년연설을 시작으로 노 전 대통령은 “일자리와 사회안전망 등을 위해서는 탈세 방지와 예산 절약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전 국민에게 증세의 필요성을 수차례 제기했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노 전 대통령의 증세 정책을 비판했다. 세금을 더 내는 것은 국민들이 싫어한다는 쪽으로 여론이 형성됐다. 언론사들도 <한겨레>를 제외한 모두가 사설을 통해 비판을 쏟아냈다. 당시 <국민일보>는 ‘국민이 싫어한다(2006년 1월 20일)’고 적었고, <동아일보>는 ‘결혼과 자녀 출산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2006년 6월 8일)’이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완전히 시대와 세계를 잘못 읽은 탓(2006년 1월 19일)’이라고 혹평했다.

감세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등판한 이명박 정부는 강력한 감세정책을 예고하고 시행했지만, 감세 정책이 소득재분배와 재정수지 악화를 초래하면서 힘을 잃었다. 여기에 임기 초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 땅 부자)’ 논란과 촛불집회로 인해 ‘감세 정책’은 곧 빈부격차를 벌리고 고소득자만을 위하는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받았다.

저소득자에게도 세금을 더 걷는 ‘보편적 증세’와 부자에게 이득을 주는 ‘부자 감세’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 지난 정부의 실패로 증명된 이상 남은 선택지는 ‘선별적 증세’, 특히 ‘부자 증세’다.

‘부자 증세’는 일부는 세금을 더 내고, 일부는 내지 않는다는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한국의 빈부격차 문제를 생각하면 일견 타당한 측면도 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은 상위 10%의 소득자와 하위 10% 소득자 간 격차가 10.1배였다.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가장 부유한 사람은 매년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10배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독일이나 프랑스가 6~7배인 것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문제는 과세의 정도인 듯하다. 진보적 성향의 <한겨레>는 4일 1면에서 ‘과세 강화 시늉만 냈다’며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에서 ‘부자 과세’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했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보수 일간지에서는 고소득자의 늘어나는 세금을 ‘세금폭탄’이라며 언급하며 그 강도가 너무 높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너무 높은 ‘부자 과세’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는 2014년에 한시적으로 강력한 부자 증세를 시행했다. 연 소득이 12억6,000만원이 넘는 구간에 대해 최고 세율을 75%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한 실제 세수 증가는 1%에도 미치지 못했고 반대로 부유층과 기업들의 자본이 프랑스를 빠져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적당한 ‘부자 과세’는 빈부 격차를 완화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많다. 한국은 아직 증세의 여력이 충분하다. 2014년 프랑스가 세율을 높일 당시 상위 10% 부유층이 32.69%의 소득을 점유한데 반해 한국은 그보다 더 높은 44.87%였다. 전체 부의 절반 가까이를 인구의 10분의 1이 점유하고 있던 것이다. 현재 개인 종합소득세 최고세율은 42%이며 법인세 최고세율은 25%다. 개인 종합소득세 세율은 지난해 기준 OECD 중위권이며, 법인세 실효세율은 하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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